중남미 경제 어디로 - 쑥쑥 크는 페루, 쪼그라드는 아르헨티나(6.16)
관리자 | 2014-06-16 | 조회수 : 1323
중남미 경제 어디로 - 쑥쑥 크는 페루, 쪼그라드는 아르헨티나
2014/06/16
브라질 월드컵의 팡파르가 울리면서 중남미 대륙이 들떠 있다. 경제도 그럴까. 지역별로 온도차가 크다. 중남미 대륙의 경제 파워가 동쪽 대서양 연안 국가에서 서쪽 태평양 연안국으로 이동하고 있어서다. 지난 10년 간 중남미 경제 부흥을 이끈 브라질은 월드컵이나 제대로 치를 수 있을까 하는 의혹을 받는다.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는 심각한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에 허덕인다. 그 사이 경제 구조를 개혁하고 적극 개방에 나선 멕시코·칠레·페루·콜롬비아 등 태평양동맹(Pacific Alliance)은 남미의 새로운 맹주로 떠올랐다. 우리나라의 중남미 수출·통상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브라질 펀드에만 매달린 국내 증권사와 개인 투자자도 포트폴리오를 새로 짜야 할 때다.
축구에 죽고 산다는 브라질에서 2014 월드컵 개최가 결정된 것은 2003년 3월이다. 골드먼삭스가 ‘브릭스와 함께 꿈을(Dreaming with BRICs)’이라는 보고서를 낸 것도 그 해 가을이다. 브라질은 중국·러시아·인도와 함께 세계경제 성장을 이끌 4대 신흥국 지위에 올랐다.
좌파 지도자였던 룰라 다 실바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정치적 안정까지 이룬 브라질 경제는 삼바춤처럼 후끈 달아올랐다. 세계 5대 자원부국에 풍부한 소비시장까지 갖춘 브라질과 주변국으로 해외 투자금과 글로벌 기업이 몰렸다. 브라질 증시인 보베스파 지수는 급등했다. 2003년 1만 포인트 언저리였던 보베스파 지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7만 포인트를 돌파했다.
브라질 월드컵 이후가 더 걱정
발 빠른 국내 투자자들도 브라질에 투자해 짭짤한 수익을 거뒀다. 국내에 브라질 전용 주식형 펀드가 등장한 것은 2007년 초. 이때 브라질 펀드에 투자한 개인 투자자들은 1년 새 100% 넘는 수익을 거뒀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2008년 주가가 급락했지만 2009년 중순부터 다시 반등해 2010년 말에는 7만3000포인트로 정점을 찍었다. 브라질이 주축이 된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도 가장 주목 받는 경제블록이었다.
남미에서 경제 규모 1~2위인 브라질·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파라과이·베네수엘라 5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메르코수르는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30개 독립국이 있는 중남미 전체의 58%를 차지하며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경제블록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메르코수르는 전반전 오버 페이스로 후반에 체력이 떨어진 축구팀 꼴이다. 지난 10년 간 4~8%씩 성장한 브라질의 경제성장률은 올해 1% 중후반에 머물 전망이다. 남미 2위 경제국인 아르헨티나는 1% 미만 성장이 유력하고 외환위기설까지 돌고 있다. 중남미에 투자했던 국내 투자자들도 그 사이 큰 손실을 봤다. 보베스파 지수는 올 3월 4만 포인트 붕괴설이 돌았고, 최근에는 5만2000포인트 안팎에 걸쳐 있다.
월드컵에 기대를 걸고 지금까지 브라질·중남미 펀드를 들고 있는 투자자들은 ‘던질까, 말까’를 고민한다. 펀드평가사인 제로인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에 설정된 14개 브라질 펀드의 누적수익률은 5월 말 기준 1년 -20%, 2년 -30%, 3년 -36%다. 또한 연초 후 6월 11일까지 수익률은 불과 0.05%다. 중남미 펀드도 마찬가지다. 모 증권사가 운용하는 B중남미 펀드의 연초 후 수익률은 -15% 정도다. 최근에는 손실이 큰 브라질·중남미 펀드를 다른 펀드상품으로 환매해 주는 증권사까지 등장했다.
그나마 기대했던 월드컵 효과도 물 건너간 듯하다. 월드컵 개막 직전 코트라(KOTRA)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무역관이 타전한 현지 분위기는 이렇다. ‘브라질은 축제 대신 월드컵 반대 시위와 계속되는 파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파업과 시위, 침체된 경제상황으로 촉발된 불안감으로 브라질 기업신뢰지수는 2008년 이후 가장 큰 하락을 보였다.
월드컵 이후에도 신용등급 하락, 낮은 경제성장률, 인플레이션 등으로 브라질 경제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월드컵 개막일까지 공사를 마치지 못한 월드컵 주경기장 ‘아레나 데 상파울로’는 혼란에 빠진 브라질과 중남미 경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메르코수르가 흔들리는 사이, 남미 대륙 서쪽 태평양 연안국의 경제협력체인 ‘태평양 동맹’이 남미의 맹주 자리를 노리고 있다. 멕시코·콜롬비아·페루·칠레 4개국이 모여 2012년 6월 공식 출범한 태평양동맹은 요즘 세계가 가장 주목하는 경제블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1~2014년 중남미 주요국의 경제 성장률은 페루 5.9%, 볼리비아 5.6%, 에콰도르 5.3%, 파라과이 5.1%, 콜롬비아 4.9%, 칠레 4.8%, 우루과이 4.4%, 아르헨티나 3.8%, 멕시코 3.0%, 베네수엘라 2.5% 등이다. 올해 성장률 전망 역시 태평양동맹국이 메르코수르를 압도한다<그래프 참조>.
정치 노선과 경제 정책의 차이가 두 세력의 희비를 낳고 있다는 분석이다. 블룸버그는 최근 ‘메르코수르 국가는 유동성 거품기에 돈을 흥청망청 쓴 반면 태평양동맹 국가는 경제개혁을 충실히 했다’며 ‘태평양 연안 중남미 국가는 고성장을 구가하는 반면 대서양 연안국은 낙오자로 전락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은 ‘자유시장 경제를 옹호하며 적극 개방에 나선 태평양동맹과 세계화에 반대하며 보호무역주의를 택한 메르코수르의 경제적 운명이 갈리고 있다’고 전했다.
중남미 펀드에 태평양동맹국 비중 커져
태평양동맹은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주도로 남미 급진좌파 국가가 모여 만든 ‘미주를 위한 볼리바르동맹(ALBA)’, 브라질이 주도하는 ‘남미국가연합(UNASUR)’, 대외적으로 폐쇄적인 메르코수르와는 전혀 다른 노선을 추구해 왔다. 안으로는 완전한 경제통합을 추구하면서 개방적 자유주의를 지향한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태평양동맹국 중 멕시코는 45개국, 칠레는 51개국, 페루는 50개국, 콜롬비아는 43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이와 달리 메르코수르는 6개국과 FTA가 발효됐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임태균 부연구위원은 “메르크수르가 경제적 공동체라기보다는 정치적 공동체로 변모했고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로 고립을 자초한 반면, 태평양동맹은 공동시장 수준의 경제통합을 추구하면서 제3국과의 자유무역을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양호한 기업환경, 높은 개방성, 정치·경제의 자유화와 민영화를 추구하는 정치 성향, 아시아·태평양에 대한 협력 강화, 미국에 대한 우호적 태도 등도 태평양동맹의 주요 특징이다. 특히 코스타리카가 최근 신규 가입하고, 미국·중국·일본·프랑스 등이 속속 옵저버 국가로 참여하는 등 태평양동맹의 몸값이 치솟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7월 옵저버 국가 자격을 얻었다.
IMF에 따르면 약 2억명인 태평양동맹 국가의 1인당 구매력은 현재 1만3000달러에서 2017년 1만8000달러로 증가할 전망이다. 해외 투자금도 폭증하고 있다. 더욱이 태평양동맹은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도 합류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태평양동맹 4개국과의 교역 규모는 메르코수르 대비 5분 1 수준(250억 달러)이다. 그동안 브라질·아르헨티나 등 메르코수르에 집중했던 우리 기업의 수출 및 현지 진출전략에 수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더욱이 최근 브라질이 메르코수르와 태평양동맹의 통합을 주장하고 나서는 등 중남미 경제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어 국내 기업과 정책 당국의 면밀한 모니터링이 절실하다. 중남미 펀드 투자를 고려하는 개인 투자자들도 태평양동맹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계 주요 자산운용사가 운용하는 중남미 펀드 대부분은 그동안 브라질 증시나 기업 비중이 압도적이었지만, 최근엔 태평양동맹국 비중을 늘리고 있다. 국내에선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지난해 말 아시아 최초로 중남미통합시장(MILA)에 상장지수펀드(ETF)를 상장했다. 이 상품의 추종 지수인 ‘S&P MILA40 인덱스’는 칠레·페루·콜롬비아의 우량 기업 40개 주식으로 구성됐다.
김태윤 이코노미스트 기자
pin2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