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마켓의 어메이징 기업을 가다]<9-1> 최고 미디어 텔레비사]
일본, 베트남, 중동 일부에서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한류`란 말이 생겼다. 하지만 `한류`는 미국과 남미는 물론 러시아, 동유럽, 나아가 인도네시아와 태국 등 일부 아시아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멕시코류`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지속성과 체계에 있어서도 `한류`는 `멕시코류`를 따라잡지 못한다.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멕시코류`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강화해 가고 있는 기업이 바로 그루포 텔레비사다. 우리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텔레비사는 미국의 히스패닉계를 포함한 스페인어권 최대의 미디어 그룹이다.
멕시코 최대의 방송사인 것은 물론 미국의 유니비전을 포함해 전세계 60개국 이상에 방송 프로그램을 수출하고 있으며 전세계 46개국에서 26개 유료TV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또 20개국 이상에서 130종의 잡지를 발행하고 있는 스페인어권 최대의 잡지그룹이기도 하다.
또 세계적인 컨설팅회사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꼽은 주주 가치 창조가 뛰어난 미디어 기업이기도 하다. BCG가 지난해 10월에 발표한 가치창조 기업 보고서에 따르면 텔레비사는 2002~2006년 연평균 총주주수익률(TSR)이 27.1%로 글로벌 미디어 기업 중 3위였다.
텔레비사의 시가총액이 137억달러(2006년 12월말 기준)인 반면 1, 2위를 차지한 미디어 기업들은 시가총액이 70억달러 남짓으로 덩치가 작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특히 2위에 오른 독일의 프로지벤 자트아인스 미디어의 경우 인수 합병(M&A)을 재료로 주가가 올랐다는 점을 고려할 때 주주상승률과 배당수익률을 종합한 텔레비사의 TSR 27%는 놀라운 수준이다.
텔레비사의 TSR이 이처럼 높은 이유는 물론 지난 5년간 연평균 10% 이상의 매출액 성장률과 영업이익 성장률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텔레비사의 2006년 매출액 성장률은 12.2%, 영업이익 성장률은 22.3%, 순익 성장률은 34.7%에 달했다. 매출액 영업이익률 역시 36.2%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실적에서나 `한류`를 압도하는 `멕시코류`의 근원을 살펴보기 위해 멕시코시티에 위치한 텔레비사 본사를 찾았다. 경영전략과 재무, 마케팅, 홍보 등을 총괄하는 텔레비사의 `브레안`은 멕시코시티에서 가장 화려하고 가장 번화한 신흥 도심가 산타페에 위치하고 있다.
산타페의 텔레비사 본사는 9만1300㎡(약 2만7600평) 부지에 5개의 사무실 건물과 1개의 서비스 건물로 이뤄져 있다. 잔디가 조정된 공원 같은 넓은 부지에 세계적으로 이름난 멕시코 출신의 현대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가 설계한 건물은 `아름답다, 세련되다, 정말 일하고 싶은 곳이다`란 느낌이 절로 들게 한다. 이 곳에는 210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이 곳에서 안토니오 알론소 전략기획국장을 만났다. 그는 텔레비사의 경영전략, 신규사업, 해외 진출, 프로그램의 장기 방향성 등을 수립하는 일을 맡고 있다. 알론소 국장은 산타페뿐만 아니라 텔레비사의 드라마 스튜디오가 위치한 멕시코시티 상 앙헬과 뉴스와 스포츠 제작국이 자리한 멕시코시티 차풀테펙에도 사무실을 갖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프로그램이 제작되는 현장을 봐야 장기적으로 프로그램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프로그램이야말로 텔레비사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텔레비사가 미국 히스패닉계 최고, 스페인어권 최대의 미디어로 인정받을 수 있는 비결도 프로그램이란 컨텐츠 덕분이란 설명이다.
텔레비사의 프로그램, 특히 드라마는 재미있기로 소문 났다. 텔레비사는 멕시코에 4개 채널을 보유하고 있는데 채널 2가 핵심이다. 이 채널 2의 멕시코 내 시청자 점유율은 32%에 달한다. 뉴스 및 스포츠, 코미디 채널 4, 18~34세 젊은층을 위한 채널 5, 가족용 채널 9 등 텔레비사의 다른 채널을 모두 합할 경우 시청자 점유율은 70%가 넘는다.
또 미국 히스패닉 사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방송사인 유니비전이 방영하는 프로그램의 42%를 공급하고 있는데 오후 8~9시 프라임타임에 제공하는 드라마의 경우 시청률이 3위로 NBC, ABC 등 메이저와 경쟁을 벌일 정도다.
우리나라 방송사의 경우 외주 제작이 늘고 있지만 텔레비사는 핵심인 채널 2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은 100% 자체 제작한다. 텔레비사는 연기자도 세아(CEA)라는 사내 연기학원에서 자체 육성한다. 알론소 국장은 "연기자 육성부터 프로그램 제작, 방영, 프로그램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수직 계열화했다"고 말했다.
수직 계열화가 사업구조의 경쟁력이라면 프로그램이란 컨텐츠의 경쟁력은 어떻게 확보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알론소 국장은 "텔레비사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스토리와 스토리 전개 능력"이라며 "히스패닉을 위한 스토리가 아니라 전세계 다른 문화권에서도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스토리"라고 밝혔다.
그는 스토리텔링 능력과 관련, "텔레비사엔 이야기 골격을 만드는 오리지널 스토리텔러들이 있는데 이들이 기본적으로 스토리를 쓴다"고 말했다. 또 "텔레비사는 남미 최대의 스토리 라이브러리(창고)를 보유하고 있어 이 곳에서 스토리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텔레비사는 1930년에 라디오 방송국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50년, 60년, 70년 전 라디오 드라마가 많다. 텔레비사는 이런 과거의 라디오 드라마를 젊은 작가들의 손을 통해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손질해 프로그램으로 제작한다.
다른 나라에서 스토리를 구매해오기도 한다. 알론소 국장은 "남미 여러 작가들과 제휴를 맺어 스토리를 사온다"며 "예를 들어 콜롬비아에 좋은 스토리가 있으면 그것을 사서 멕시코에서 새로 제작해 방송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어글리 베티`는 사실 `베티 라 페아`라는 콜롬비아 드라마였다. 알론소 국장은 "텔레비사 역시 이 드라마의 스토리를 가져다 멕시코판으로 제작해 방영했는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고 소개했다.
남미에선 TV 드라마를 `텔레 노벨라`, 즉 `TV 소설`이라고 부른다. `소설`이란 단어에서 알 수 있듯 남미 드라마에선 아름다운 영상이나 인기 있는 배우, 화려한 소품보다 `스토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크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미니 시리즈라고 하면 16부작, 24부작이 고작이지만 멕시코는 기본이 100부작이다. 그만큼 드라마를 길게 이끌고 갈만한 스토리가 탄탄하고 스토리 전개 능력이 뛰어나다는 얘기다.
텔레비사는 한국과도 사업 제휴를 추진하고 있다. 알론소 국장은 "멕시코와 한국은 문화적으로 매우 다르지만 가족에 대한 가치와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접근 같은 것은 매우 비슷하다"며 "현재 MBC 계열의 프로덕션과 공동 사업을 위한 초기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알론소 국장은 그러나 텔레비사의 드라마를 한국에 그대로 방송하고 한국의 드라마를 그대로 멕시코에 방송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드라마를 멕시코에서 다시 제작해 방송하고, 마찬가지로 우리 드라마를 한국이 다시 제작해 방송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며 "이것이 다른 문화권에서 더 크게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텔레비사의 젊은 최고경영자(CEO)인 에밀리오 아스카라가 장은 직원들에게 "우리의 진정한 경쟁자는 디즈니와 CNN"이라고 강조하곤 한다. 텔레비사가 글로벌 미디어 그룹으로 디즈니나 CNN과 경쟁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배경엔 전세계인들을 웃기고 울리게 할 수 있는 스토리 경쟁력이 있다.
/ 머니투데이 멕시코시티(멕시코)=권성희, 임영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