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중미 정상들'…부정부패 의혹에 퇴진요구 직면
2015/6/16
면책특권 박탈, 현직 대통령 조사 가능성도
가난과 사회적 무질서가 혼재한 중미 국가의 최고 권력층에 부정부패 의혹이 불거지면서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의 거리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온두라스와 과테말라 대통령은 공금의 정치 자금 유용, 정부 프로젝트와 관련한 수뢰에 직간접으로 연루됐다는 의혹을 각각 받고 있고 파나마 전 대통령도 공금 횡령 등의 혐의로 사정 당국의 표적 선상에 올랐다.
과테말라 의회는 대통령의 면책특권 박탈을 추진하고 있어 현직 대통령에 대한 조사 가능성도 점쳐진다.
◇ 과테말라 대통령, 수뢰 조사 면책특권 박탈 위기 = 수도 과테말라시티 중심가에서는 최근 2개월간 주말마다 수 천 명의 농민과 원주민이 몰려나와 오토 페리스 몰리나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위는 지난달 9일(이하 현지시간) 록사나 발데티 부통령이 측근이자 세관 고위직 공무원의 뇌물수수 혐의가 드러나 사임하면서 촉발됐다.
1주일 후 대통령궁 앞에는 몰리나 대통령도 연관됐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는 시위대가 진을 치고 퇴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같은 달 20일 검찰은 훌리오 수아레스 중앙은행 총재와 후안 데 리오스 로드리게스 사회복지연구소 소장을 포함한 조직의 관리 십여 명을 뇌물 수수 등 부정 혐의로 체포했다.
이들은 작년 말 신장 투석 의료 서비스와 관련해 1천450만 달러 규모의 납품 계약을 한 특정 약품회사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몰리나 대통령의 보좌관 출신인 로드리게스도 부정에 연루되자 몰리나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부정에 연루된 내무, 환경, 에너지광물, 안보부 장관 등 내각 부처 장관들이 이어 줄줄이 옷을 벗었다.
몰리나 대통령은 세간에 제기되는 의혹들과 자신은 연관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내년 1월까지인 임기를 끝까지 마치겠다고 천명했다.
과테말라 의회는 그러나 대통령을 조사하기 위한 면책특권 박탈 여부를 표결로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의원 158명의 3분의 2인 105명이 찬성하면 면책특권이 박탈될 수도 있다고 베네수엘라 언론매체인 텔레수르가 15일 전했다.
앞서 과테말라 최고법원은 몰리나 대통령의 부정 의혹을 조사하기로 법관 만장일치고 결정하고 이를 의회에 통보했다.
몰리나 대통령에 대한 조사 요구는 노벨평화상을 받은 과테말라 원주민 출신의 리고베르타 멘추가 이끄는 위나크당이 제기했다.
오는 9월 총선을 앞둔 과테말라 정국의 향배는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다.
◇ 온두라스 대통령, 대선자금 유용 의혹 = 지난 5일 온두라스 수도 테구시갈파 시내의 한 병원에서 2만여 명의 군중이 유엔 사무소 건물까지 거리 행진을 하면서 후안 오를란도 에르난데스 대통령의 퇴진을 외쳤다.
이는 2013년 말 대선 당시 보건의료 분야의 정부 예산을 에르난데스 대통령 측에서 선거 자금으로 유용한 의혹을 야권이 제기했고, 집권 여당이 이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시위대는 나라 예산이 불법적으로 유용돼 2천800명의 환자가 치료 약품을 구하지 못해 억울하게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야권은 3억 달러 안팎에 달하는 사회복지기관의 예산이 유용됐고 이 가운데 에르난데스 당시 후보가 9천만 달러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에르난데스 대통령은 액수가 터무니없이 과장됐다면서도 부정 의혹에 대해서는 철저한 조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사회복지기관의 관계자 10여명이 이와 관련해 현지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으나 야권은 유엔 관계 위원회가 직접 투명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에르난데스 대통령은 14일 정국 불안과 관련해 야당 지도자들과 직접 대화할 의사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정부 여당의 대선 자금 부정 의혹은 제2당인 자유재건당과 반부패당 등이 연대를 형성해 집중적인 공세를 하고 있다.
자유재건당은 지난 대선에서 아내를 후보로 내세웠다가 에르난데스 대통령에게 패한 마누엘 셀라야 전 대통령이 이끌고 있다.
그는 2009년 연임을 하려고 헌법 조항을 바꾸려고 시도했다가 군부와 반대파 세력이 규합해 일으킨 쿠데타로 축출됐다.
◇ 국외 체류 파나마 전 대통령, 소환 가능성 = 파나마 대법원은 1월 과도한 예산이 책정된 학교 급식 프로그램을 리카르도 마르티넬리 전 대통령이 승인하도록 강요했다는 고발에 따라 특별검사를 임명해 조사하기로 한 바 있다.
관련 예산 규모는 4천500만 달러에 달한다.
부패 척결을 국정의 주요 과제로 삼은 후안 카를로스 바렐라 대통령 정부는 학교 급식 프로그램을 포함해 공항 주차장 건설, 조세 징수업체 계약 등의 과정에서 1억 달러에 달하는 공금이 횡령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러한 공금이 권력층에 고가 자동차와 아파트, 요트 구매 등 사치 행각에 이용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대법원이 조사를 결정한 직후 마르티넬리가 피신하듯 미국으로 건너가 귀국하지 않는 가운데 고위 측근들이 잇따라 사법당국의 수사망에 걸리는 등 관련 의혹이 점점 커지자 그에 대한 면책특권 박탈까지 거론되고 있다.
검찰은 지난 3일 마르티넬리의 최측근인 펠리페 비르시 전 부통령이 관급 공사를 수주한 업체로부터 1천만 달러를 챙긴 혐의에 대해 수사하기 위해 비르시를 구금했다.
앞서 지난달 마르티넬리 정부 때 경제장관이 곡물 수입 계약과 관련해 170만 달러를 횡령한 혐의로 체포됐고 사회개발부 장관도 공금 유용 혐의로 투옥됐다.
마치 '도미노 현상'처럼 전 정권의 비리가 들춰지고, 종착역은 마르티넬리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파나마 정계 주변에서 나온다.
공금 횡령 등의 혐의와 관련해 사법당국이 조사선상에 오른 리카르도 마르티넬리 파나마 전 대통령.(AP=연합뉴스DB)
hopem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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