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이민 50주년 잔치에 현지인이 넘쳐났다
2015/9/21
3만명 교민의 배 넘는 현지 관람객 '북적'…화합과 축제의 장
20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남부의 차카부코 공원.
차분했던 여느 때 휴일과 달리 오전 일찍부터 공원에는 현지인들이 삼삼오오 몰려들었다.
이날은 아르헨티나 한인회(회장 이병환)가 올해 초부터 준비해온 이민 50주년 기념 행사를 개최하는 날.
공원 한쪽 분수대에 마련된 B무대에는 이미 아르헨티나 K팝 동호회 회원들의 화끈한 무대가 교민과 현지 10대 남녀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다.
B무대 옆 한국 대 아르헨티나의 민속 씨름판에는 현지인들이 '한국 샅바'의 안다리, 바깥다리 기술에 고목 쓰러지듯 속수무책 모래판에 고꾸라졌지만, 이색적인 장면에 양 국민 모두 웃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후 1시에 개막하는 행사 2시간여 전 A무대에 마련된 대형 스피커가 굉음을 뿜어내고 LED 전광판에 불이 들어오자 갑자기 시선이 쏠렸다.
교민 풍물패가 A무대 앞 운동장 앞에서 한바탕 신나게 놀자 A무대와 B무대 사이에 있는 음식 코너에 정신이 팔렸던 '식객'들도 먹을거리를 들고 바삐 움직였다.
풍물패를 앞세우고 대형 태극기와 아르헨티나 국기가 입장하고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모형과 독도 조형물이 무대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나자 어느새 운동장은 발 디딜 틈이 없어졌다.
차전놀이가 웅장한 함성과 함께 무대 앞에서 펼쳐지자 아르헨티나 방송사들의 취재 열기는 뜨거워졌고 관객의 반응도 달궈지기 시작했다.
교민 태권도계의 김한창 사범(77)이 대련 시범에서 우락부락한 현지인 제자를 일격에 쓰러뜨리는 노익장을 과시하는 순간 탄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어 아르헨티나의 열정적인 탱고와 1만명 K팝 동호회 중 엄선된 팀이 춤을 선사한 뒤 가수 조성모와 김경호가 등장하자 함성은 떠나갈듯했다.
교민 민예단의 장구춤과 부채춤, 성주풀이 가락이 흥겨움을 더했고 날이 어두워지면서 이어진 퓨전 음악 무대와 불꽃놀이에 행사는 절정을 이뤘다.
1965년 10월 13가구 78명의 한인이 부에노스아이레스 항구에 도착해 중남부 도시 라마르케로 이주하면서 시작된 아르헨티나 이민 역사상 이날은 가장 흥겹고 보람된 날이었다.
대부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거주하는 아르헨티나 교민은 한때 5만 명까지 달했다가 외환위기 등을 거치면서 3만명 안팎으로 줄었다.
그들의 50주년 기념행사에는 한국의 노래와 춤, 음식 등 문화에 친근감을 느끼고 호기심을 둔 현지인들이 교민 인구의 배가 넘게 찾았다.
현지의 한 경찰은 관람객이 최소 6만 명은 된다고 했고, 행사 조직위원회는 이를 훨씬 넘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수만 명이 몰렸지만 무질서한 난동이나 술판은 없었다.
최소한의 경찰 인력이 동원됐고, 그들도 행사를 즐겼다.
먹거리 코너에 마련된 한국 음식의 가격은 최저가로 조정됐고, 서울을 왕복할 수 있는 항공권이 1등 경품으로 걸린 복권 추첨장에는 한국을 갈 수 있는 행운을 잡으려는 현지인들의 기대감으로 넘쳐났다.
한인회와 코트라 부에노스아이레스 무역관(관장 박종근)은 섬유산업에 종사하는 현지 동포기업이 자발적으로 기증한 의류 5천 점과 1만 1천 달러 상당의 문구류를 아르헨티나 사회개발부에 기증했다.
아르헨티나에 한인 사회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행사에 참석한 카리나 야로체우스키 아르헨티나 사회개발부 차관보는 "열심히 일하는 자국의 문화를 존중하는 한국 교민 사회가 발전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인회는 부천국제영화제에 참가한 적이 있는 현지 영화감독과 함께 제작한 이민 50년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국제영화제에 출품할 예정이다.
한인회는 이미 지난 3월 라마르케의 토마토 축제에 참가해 한국 음식을 소개하면서 전통 의상을 선보이고 지난 6월에는 한국학 세미나를 개최하는가 하면 한국 논문 공모전, 미술 교류전, 음악회 등 다양한 행사를 펼쳤다.
올 연말에는 '한국 이민 50년사'를 출간할 계획이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위원장 나경원) 소속 의원들은 19일 아르헨티나 재외공관 감사를 마치고 이날 참석했다가 현지인들의 높은 관심에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인회 관계자는 귀띔했다.
이병환 한인회장은 "이번 행사는 이민 1세대가 1.5세대와 2세대를 연결하는 의미가 있다"며 "교민사회는 현지인과 교류하고 화합하면서 100년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연합뉴스) 이동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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