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위 갑부 카를로스 슬림
소유회사만 220개… "멕시코는 슬림의 손아귀에"
레바논 이민자의 아들… 주식•부동산으로 떼돈
검소하고 스캔들도 없어… '정치와 결탁' 비판도
미국 포브스지(誌)가 10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세계의 갑부 1125명을 발표했다.
13년간 1위를 지켰던 빌 게이츠가 3위(580억 달러)로 밀려나고 작년 2위였던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1위(620억 달러)로 올라섰다. 게이츠와 버핏 사이에 2위로 이름을 올린 인물은 멕시코의 재벌 카를로스 슬림(68)이다. 600억 달러(약 57조9180억원)의 재산을 모은 슬림은 누구이고, 어떻게 많은 재산을 모았을까?
◆이동통신•항공•방송 등 닥치는대로 손대="저희 업소는 멕시코에서 유일하게 카를로스 슬림의 소유가 아닙니다."
지난해 월 스트리트 저널이 카를로스 슬림을 소개한 글에 멕시코의 한 식당 메뉴에 적힌 이런 안내문이 나온다. "멕시코에서는 슬림의 재산을 불려주지 않고는 하루도 보낼 수 없다"는 말도 있다. 슬림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그는 유•무선통신, 금융, 레스토랑 체인, 담배, 타이어, 알루미늄 제조, 타일 제조, 인터넷 서비스, 컴퓨터, 항공, 방송사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손을 댔다. 슬림이 지배 지분을 가진 회사만 220개가 넘는다. 전형적인 문어발식 경영이다.
미국 윌리엄 앤드 메리 대학의 멕시코 전문가인 조지 그레이슨(Grayson) 교수는 "멕시코인들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슬림을 벗어날 수 없다"며 "멕시코는 '슬림란디아(Slimlandia•슬림제국)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멕시코 주식시장 거래주식 중 3분의 1이 슬림이 지배하는 회사의 것이다. '슬림 제국'의 직원 수만도 20만 명이 넘는다.
◆"실제로는 세계 1위의 부자일 것"=2004년 슬림의 재산은 139억 달러였다. 세계 17위. 당시 세계 최고의 부호였던 빌 게이츠의 재산(466억달러)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이었다. 슬림은 2005년 238억 달러(4위), 2006년 300억 달러(3위)를 차지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531억 달러로 버핏을 제치고 2위가 됐다. 2006년에서 2007년 사이의 증가분만 따지면 시간당 200만달러가 넘게 재산이 늘었다는 얘기다.
지난해 여름에는 슬림이 세계 최고의 부자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미국의 포천(Fortune)이 선정하는 세계 최고의 억만장자 명단에서 슬림은 590억 달러의 재산을 보유, 빌 게이츠(580억달러)를 앞질렀다. 멕시코 일간지 '엘 우니베르살(El Universal)'은 "담배에서 이동통신 사업까지 자기 제국을 이끌고 있는 슬림이 세계 최고의 부호로 등극했다"고 보도했다.
슬림이 보유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최대의 이동통신사인 아메리카 모빌(America Movil)의 주가 상승이 주요인이었다. '중남미의 록펠러'라고 불리는 슬림의 재산을 합치면 멕시코 국내총생산(GDP)의 6.6%에 이른다고 한다. 정작 록펠러의 재산은 최고 전성기였던 1937년에도 미국 GDP의 2%를 넘지 못했다.
슬림은 올해 포브스가 매기는 부자 랭킹에서 정상 등극에 실패했다. 빌 게이츠를 추월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투자의 귀재' 버핏에게 역전당했기 때문이다. 버핏의 주식이 훨씬 많이 올랐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레바논 이민 2세의 아들=슬림의 풀네임은 카를로스 슬림 엘루(Carlos Slim Helu)다. 슬림은 아버지의 성, 엘루는 어머니의 성에서 따왔다. 레바논 이민자의 아들인 그는 '멕시칸 드림'을 실현시킨 인물이다.
슬림은 레바논 이민자의 아들이다. 아버지 훌리안 슬림 하다드(Haddad)는 열네 살 때인 1902년 레바논을 떠나 멕시코에 도착했다. 당시 오스만제국은 열다섯 살짜리 청소년들부터 징집을 했는데, 이를 피해 부모가 멕시코로 보낸 것이다. 일종의 '병역기피'를 위한 도피였다. 카를로스 슬림의 어머니 린다 엘루 역시 레바논 출신 이민자의 딸이다.
훌리안 슬림 하다드는 사업가의 수완을 발휘했다. 먼저 멕시코에 와있던 열세 살 위의 형과 멕시코시티에서 '동방의 별(La Estrella de Oriente)'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돈을 벌었다. 멕시코 혁명 후 혼란을 틈타 멕시코시티 중심가의 부동산을 헐값에 사들이기도 했다. 이 땅들이 나중에 금싸라기가 됐다.
카를로스 슬림은 1940년 1월 28일 멕시코시티에서 훌리안 슬림 하다드의 6남매 가운데 넷째로 태어났다. 슬림의 아버지는 어린 자녀들이 일찌감치 '경제 감각'을 체득할 수 있도록 교육했다. 매주 일요일에 5페소씩 용돈을 주고 사탕 하나 사먹는 것까지 '용돈기입장'에 쓰도록 했다. 어린 시절 손때 묻은 용돈기입장을 슬림은 아직도 애지중지하고 있다. 슬림은 열두 살 때 멕시코국립은행 주식을 사들이면서 주식 투자에도 나섰다. 슬림은 아버지의 교육법을 자기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적용했다.
◆"돈 되는 건 뭐든지 한다"
아버지로부터 부동산과 주식에 대한 감각을 물려받은 슬림은 돈 되는 일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투자했다.
멕시코의 명문인 UNAM(멕시코국립자치대학)을 졸업한 그는 물려받은 부동산에 집 대신 건물을 지어 분양하면서 현금을 챙겼다. 또 증권에 손을 대면서 빠른 판단과 정보력으로 돈을 모았다. 1970년대에는 본격적인 인수합병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자동차 부품, 레스토랑, 소매점, 백화점, 타일 등 전방위로 손길을 뻗쳤다. 1980년대에는 남미 경제가 흔들리는 가운데 매물로 나온 금융회사 등을 사들인 뒤 경영을 정상화하는 방식으로 '슬림제국'을 확장했다.
1980년대 초 멕시코에도 외환위기가 닥쳤다. 많은 부호들이 멕시코를 떠날 때 슬림은 오히려 기업을 공격적으로 사들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멕시코가 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멕시코 혁명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던 1910년 대부분의 부자들이 멕시코를 등질 때 아버지가 헐값으로 부동산을 사들인 것과 비슷했다.
슬림이 멕시코 최고의 갑부가 된 전환점은 1990년 당시 국영 통신업체였던 '텔멕스(TELMEX)' 인수였다. 텔멕스는 현재 멕시코 유선전화의 92%를 장악하고 있다. 해마다 60억 달러 가량의 순이익을 내는 알짜배기 회사다. 거기에 아메리카 모빌이라는 회사까지 손에 넣었다. 이 회사는 2000년 이후 가입자가 매년 40% 이상 늘어나고 있는 남미 최대의 이동통신회사로 몸집을 불렸다. 현재 그는 남미 16개국에서 통신업을 운영하고 있다.
◆정치와 결탁했다는 비난을 받기도=슬림은 정치인들과 결탁해 돈을 벌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실제로 텔멕스 인수와 관련해서도 말이 많았다. 당시 멕시코 정부는 텔멕스에 6년 동안 멕시코 유선전화 사업 독점권을 줬다. 민영화 결정 후 야당이 카를로스 살리나스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할 정도로 시끄러웠지만, 의회조사위원회는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다.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멕시코 운송통신부 장관을 지낸 인물은 텔멕스 임원 출신이었다. 또 WTO(세계무역기구)가 "불합리한 국제전화요금과 미국 회사들의 멕시코 진출을 방해하는 텔멕스를 조사해달라"고 멕시코 연방통신위원회에 요청했지만, 대답 없는 메아리로 끝났다.
의회에서는 슬림이 가는 길에 걸림돌이 될 만한 법안이 올라오면 '알아서' 부결시키는 형국이다. 요즘 슬림은 여당이나 야당 정치인들을 고루 지원하고 있다. 슬림은 좀처럼 전면에 나서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자신을 소개하는 사이트를 만들었고 언론과도 만나고 있다.
◆쿠바산 시가가 유일한 호사
그는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암소가 젖이 많을 때 아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활 신조다. 호화 요트나 별장도 없다. 현재 사는 집도 30년이 넘었다. 외국에도 집 한 채 없다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그는 명품시계 대신 계산기 달린 전자시계를 차고 다닌다. 유일한 호사는 피델 카스트로가 즐겼다는 쿠바산 코이바(Cohiba) 시가를 피우는 것이다.
야구광인 그는 뉴욕 양키스의 팬이다. USA투데이가 인터뷰 요청을 하자 "내가 만든 야구 기록표를 편집 책임자에게 전달하겠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응했다. 신문에 실리는 기록표보다 자신이 만든 기록표가 훨씬 앞서있기 때문에 바꿔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여배우나 모델들과의 염문설이 터져 나온 적도 없다. 1999년 부인이 신장 질환으로 사망한 뒤에도 스캔들에 시달린 적은 없다. 매주 월요일에는 가족들과 모여 식사를 한다.
그는 수학적 재능이 뛰어나다고 한다. 암산만으로 기업 전체의 수익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컴맹'이다. "사업하는 데는 내 머리와 작은 노트 하나면 충분하다"는 것이 슬림의 지론이다. 그와 면담했던 사업가는 "슬림은 아무 자료도 없이 몇 번을 겹쳐 접은 종이 한 장을 들고 왔다"며 "회사 이름을 거명하며 설명하는 그를 보면 머릿속에 모든 자료가 들어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1997년 심장 수술을 받았던 슬림은 현재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명예회장 타이틀만 가지고 있다. '2세 수업'을 해온 아들 세 명과 사위들이 회사를 운영하지만, 최종 결정은 슬림이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아들들은 유학을 하지 않고 모두 멕시코에서 학업을 마쳤다.
조선일보 조정훈 기자 donju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