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 출신 첫 여성 대통령'서 '탄핵 불명예' 멍에 쓴 호세프
2016/09/01
룰라 정부서 승승장구…재정회계법 위반ㆍ경제위기ㆍ부패에 민심 돌아서
'좌파 무장 게릴라', '브라질의 대처', '첫 여성 대통령'….
'롤러코스터 인생' 역정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지우마 호세프(68) 대통령에게 '탄핵당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 꼬리표가 추가됐다.
호세프 대통령은 탄핵심판 최후 변론에서 정치권이 재정회계법 위반을 이유로 탄핵을 추진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부결을 호소했지만, 끝내 탄핵을 피하지 못했다.
호세프 대통령은 1992년 브라질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당한 페르난두 콜로르 지 멜루 전 대통령에 이어 24년 만에 탄핵으로 권좌에서 쫓겨난 두 번째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그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고 명예회복을 위해 대법원에 위헌소송을 제기하는 등 끝까지 싸울 태세를 보이고 있지만, 한번 실추된 명예와 위상이 회복될지는 미지수다.
호세프는 그에게 따라붙은 수식어에 걸맞게 굴곡이 심한 인생을 살았다. 고문을 이겨 낸 급진좌파 무장 게릴라 시절을 비롯해 암 투병생활,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 등을 두루 경험했다.
호세프는 1947년 12월 14일 남동부 미나스제라이스 주 벨루오리존치 시에서 불가리아계 이민자 후손 가정의 1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나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는 젊은 시절 극렬 좌파 게릴라 조직에 투신해, 독재 군사정권(1964∼1985년)에 맞섰다.
1970년 투쟁자금 마련 목적으로 은행강도를 한 조직에 몸담은 혐의로 군사정권 당국에 체포돼 3년 가까이 옥살이를 했다. 이때 전기 고문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다.
호세프는 출소 뒤 브라질 최남부 리오그란데 도 술 주의 주도 포르투 알레그레에 있는 연방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상파울루 주 캄피나스 대학에서 경제통화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합법적인 정치 투쟁의 길을 택했다. 1980년 남부 포르투 알레그리 시에서 노동자당(PT)의 전신인 민주노동당(PDT) 창당에 참여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1986년부터 2002년까지 지방정부의 재무국장과 에너지부 장관 등을 지냈다.
2001년 노동자당에 입당해 빈민 노동자 출신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으면서 호세프는 정치인이자 행정가로서 급성장했다.
호세프는 2003년 1월 룰라 행정부 출범과 함께 에너지부 장관에 임명됐다. 2005년 6월에는 수석장관인 정무장관에 기용돼 5년 가까이 재직했다.
2009년 암의 일종인 림프종 진단을 받아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병마를 이겨낸 호세프는 2010년 룰라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대선에 도전, 브라질 사상 첫 여성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2014년 말 재선 승리로 브라질 사상 연임에 성공한 세 번째 대통령이 됐다.
호세프는 그러나 1기 집권 시절인 2014년에 대선을 앞두고 연방정부의 막대한 재정적자를 가리기 위해 국영은행의 자금을 사용하고 이를 되돌려주지 않는 등 재정회계법을 위반했다는 주장이 불거지면서 탄핵 공세를 받기 시작했다.
연방회계법원은 2015년 10월 호세프 정부가 국영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실업보험과 저가주택 공급 등 사회복지사업에 사용하고 돈을 제때 상환하지 못했다며 불법행위로 판결했다.
여기에 물가상승을 동반한 최악의 경기침체와 정관계 부정부패 의혹으로 민심이 급속히 돌아서면서 탄핵 정국을 부채질했다.
호세프 대통령은 브라질 의회의 탄핵 절차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쿠데타로 규정하고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아직도 선악 구분이 명확했던 과거 반(反)독재 투쟁 시절의 사고방식에 매몰돼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브라질 하원은 같은 해 12월 호세프 정부에 대한 연방회계법원의 판결을 근거로 탄핵 절차에 착수했고, 상원은 약 9개월 만에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을 최종 가결했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국기헌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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