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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만에 막 내린 브라질 좌파정권…경제침체·부패에 발목
관리자 | 2016-09-01 |    조회수 : 976
14년 만에 막 내린 브라질 좌파정권…경제침체·부패에 발목

2016/09/01 

당분간 세력 위축 불가피…2018년 대선서 권토중래 노려
중남미 '핑크 타이드' 퇴조에 결정적 요인 될 수도
 

 "희망이 두려움을 이겼다". 브라질 좌파 노동자당(PT) 대선후보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가 2002년 말 대선에서 승리하고 나서 지지자들을 향해 외친 말이다.

노동자당 정권은 2002년에 이어 2006년, 2010년, 2014년 대선에 연거푸 승리하며 브라질을 넘어 중남미 지역에 이른바 '좌파 대세론'을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빈민가에서 태어난 노동자 출신의 룰라가 연임에 성공하며 8년을 집권했고, 지우마 호세프가 여성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남성 중심의 보수적 문화를 뚫고 재선에 성공한 것은 브라질 헌정사에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노동자당의 장기 집권에 국민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고, 사상 최악의 경제침체 속에 잇달아 터져 나온 권력형 부패 스캔들은 결국 호세프 대통령 탄핵과 좌파정권의 몰락을 가져왔다.

브라질은 중남미의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1990년대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과감하게 수용하면서 외국인 투자 확대와 급속한 경제 성장, 물가 안정에 성공했다.

페르난두 엔히키 카르도주는 재무장관 시절인 1994년에 도입한 헤알 플랜(Real Plan)으로 물가를 잡으면서 국민의 신망을 얻었다. 헤알 플랜은 연간 물가상승률이 5천%를 넘는 비상 상황에서 나온 것으로, 미국 달러화와 교환 비율을 1:1로 묶는 고정환율제를 바탕으로 헤알을 새 통화로 도입한 방안이었다. 카르도주는 헤알 플랜을 앞세워 1994년 대선에서 승리했고 1998년 재선에 성공했다.

카르도주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통해 괄목할 만한 경제실적을 이뤄냈다. 물가를 한 자릿수로 낮추고 경제성장률은 4%대로 높였다. 그러나 과도한 시장 개방은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렸고, 무역수지 악화와 외채 급증으로 브라질은 1999년 외환위기를 맞았다. 카르도주의 실패는 좌파 진영에 길을 열어주었다.

군사독재정권(1964∼1985년) 말기에 좌파 지식인들과 노동계는 자신들을 대변할 인물을 찾았다. 노동운동을 통해 전국적 인물로 성장한 룰라는 그들이 찾는 적임자였다. 정당을 통한 사회 변혁을 추구한 룰라는 1980년 2월 10일 노동자당을 창당했다. 

'노동자와 소외계층을 위한 정당'을 표방한 노동자당은 대중으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다. 룰라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주도했다. 1982년 상파울루 주지사 선거에 도전하며 정계에 뛰어든 룰라는 1986년 의회선거에서 전국 최다 득표로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룰라는 1989년과 1994년, 1998년 대선에서 잇달아 고배를 마신 끝에 2002년 대선에서 우파 성향의 섬유업계 재벌을 러닝메이트로 삼아 시장의 불안을 해소하면서 집권에 성공했다.

브라질의 저명한 사회학자 프란시스쿠 올리베이라는 룰라의 2002년 대선 승리를 두고 '제4의 혁명'이라고 했다. 19세기 노예제도 철폐와 군주제 폐지, 1930년대 국가산업화 정책에 이어 브라질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온 네 번째 혁명적 사건이라는 의미다.

룰라가 이끄는 브라질 경제는 2003년부터 눈부신 성장세를 계속했다. 중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의 호황에 따른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은 브라질에 호재였다. 경제 성장과 고용 창출, 최저임금 인상, 소득 재분배 확대, 저소득층 지원 등을 통해 빈곤층을 대거 중산층에 편입시키면서 빈부 격차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했다. '룰라 효과'는 대략 10년간 계속됐다.

2014년 말 대선을 전후해 상황이 급변했다. 경제는 2014년 0.1% 성장에 이어 2015년에는 -3.8%로 곤두박질쳤고 실업자가 늘기 시작했다. 국제 원자재 가격이 하락세로 꺾인 상황에서 호세프 정부와 노동자당의 정책 실패로 경제위기가 더욱 심화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감세 조치가 산업생산을 자극하지 못하고 연금 등에 대한 정부지출이 과도하게 이루어지면서 정부 재정이 갈수록 악화하는 점이 정책 실패로 꼽혔다. 구조적인 개혁이 따르지 않고 경제침체가 계속되면 수천만 명을 빈곤에서 구제한 사회적 성과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정부 재정 악화와 치솟는 물가는 노동자당 정권 사회복지정책의 근간을 흔들었다. 사회복지 프로그램 예산 축소로 지지층은 갈수록 떨어져 나갔다. 

노동자당은 호세프 탄핵으로 정권을 잃은 데 그치지 않고 당의 존립기반이 흔들리는 위기에 빠졌다. 당장 오는 10월에 시행되는 지방선거에서 고전이 예상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노동자당은 시장 후보로 1천100여 명을 내세울 예정이다. 2012년 지방선거 때의 1천759명보다 35%가량 줄어든 것이고, 1996년 지방선거 당시 1천77명 이후 20년 만에 가장 적은 규모다. 사법 당국의 부패수사로 기업에 손을 벌리기 어려워진 데다가, 호세프 탄핵으로 당의 이미지가 실추한 결과다.

노동자당 후보들의 지지율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상파울루 시장 선거에서는 노동자당 현직 시장의 재선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당은 올해 지방선거에서 선전하고, 2018년 대선에서 룰라 전 대통령을 내세워 정권을 되찾는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룰라가 노동자당 대표를 맡아 정치 전면에 나설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올해 지방선거에서 기대 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하면 노동자당은 회복 불능의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한편, 호세프 탄핵과 노동자당 정권 몰락은 한때 중남미를 물들였던 '핑크 타이드'(Pink Tide·온건한 사회주의 성향의 좌파 물결)의 퇴조를 결정적으로 앞당기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저소득층 지원과 소득 재분배를 통한 사회·경제적 불평등 축소를 내건 온건 사회주의 성향의 좌파 물결은 1990년대 말에 등장했다. 1999년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 당선을 시작으로 브라질(2002년), 아르헨티나(2003년), 우루과이(2004년), 칠레·볼리비아(2006년) 등에서 좌파가 줄줄이 정권을 잡았다.

중남미 좌파는 2010년을 전후해 거센 도전에 직면했으나 같은 해 10월 브라질을 시작으로 아르헨티나, 페루, 베네수엘라 대선에서 좌파 후보가 당선되며 '좌파 대세론'을 확인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남미 대륙 12개국 가운데 콜롬비아와 파라과이를 뺀 10개국이 좌파정권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중남미 정치지형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과테말라 대선에서 중도우파 후보가 67.5%의 득표율로 좌파 여당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11월 아르헨티나 대선에서는 친기업 성향의 중도우파 마우리시오 마크리가 승리하며 12년간 이어진 '좌파 부부 대통령' 시대를 끝냈다. 12월 베네수엘라 총선에서는 중도 보수 야권연대가 전체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가져갔다. 올해 6월 페루 대선 결선투표에서는 세계은행 경제학자 출신인 우파 성향의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가 승리했다.


(상파울루=연합뉴스) 김재순 통신원 =

fidelis21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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