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대통령 남편 영향력 여전…`2명의 대통령 존재` 비난
"남편의 정치적 후광에 안주하는 여성 대통령…"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았으나 전임자인 남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2003~2007년)의 대리인에 불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르헨티나 사상 최초의 선출직 여성대통령이라는 화려한 타이틀 속에 지난해 12월 10일 취임한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의 내각을 대부분 이어받으면서 "전임 정부의 정책을 승계하겠지만 남편과는 조금 다른, 보다 나은 정부를 꾸려가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취임 100일을 맞은 현재 전임 정부와의 차별성을 부각하는데 실패한 것은 물론 '파타고니아의 표범'이라는 평소의 명성에도 걸맞지 않은 행태로 언론으로부터 냉소적인 비아냥거림을 듣고 있다.
이에 대해 브라질 일간 폴랴 데 상파울루는 18일 정치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 "아르헨티나의 현 정부는 키르치네르 정부의 연속일 뿐"이라면서 "페르난데스에 대한 정확한 평가에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녀가 제시했던 변화를 위한 약속은 실망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아르헨티나의 유명 정치분석가인 세르지오 베렌스테인은 "아르헨티나 현대사를 지배해온 페론당의 재구성을 통해 정부를 강화하겠다는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의 의도는 아내인 페르난데스 대통령으로부터 빛을 빼앗고 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이는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이 지금도 자신의 개인 사무실에서 주요 각료와 정치 지도자들을 접견하며 '수렴청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이 때문에 아르헨티나 언론과 야당, 정치 전문가들은 "아르헨티나에는 현재 2명의 대통령이 존재한다"는 비난을 제기하고 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에 대한 아르헨티나 국민의 '비뚤어진 애정'을 지적하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미국 검찰과 연방수사국(FBI)이 지난해 10월 대선을 앞두고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으로부터 현금 80만 달러가 선거자금으로 전달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이미지에 상처가 났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았다.
지난 2001~2002년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2003년 이후 연간 8%대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의 후광을 등에 업은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인기는 여전하다.
그나마 페르난데스 대통령을 높게 평가하는 요소는 외교정책이다.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이 사실상 외교문제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취임 당시부터 "아르헨티나를 세계무대에 복귀시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 최근 남미 방문길에 나선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아르헨티나를 건너뛴 채 브라질과 칠레만 방문하고 돌아간 것이 대표적인 예다.
국제문제 전문가인 로젠도 프라가는 "라이스 장관이 방문 대상국에서 아르헨티나를 뺀 것은 미-아르헨티나 관계가 아직도 서먹한 단계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석유와 식료품 맞교환 협정을 위해 베네수엘라를 방문하고, 천연가스 수급 안정을 위해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 및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을 초청해 정상회의를 갖는 등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국제무대에서 두드러진 입지를 구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에너지 위기와 꿈틀대는 인플레도 앞으로 만만치 않은 과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2003~2007년 사이 계속된 고도성장의 지속 여부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아르헨티나 정치권에서 페르난데스 대통령에 도전할 세력은 거의 없는 상태다. 이를 빗대어어 "페르난데스의 최대 도전자는 페르난데스 자신"이라는 말도 나온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실질적 권한이 없는 파트타임 대통령' '전직 대통령인 남편의 대리인'이라는 씁쓸한 평가를 털어낼 수 있을지 관심이다.
(상파울루=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