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게바라가 꿈꿨던 혁명은 끝났다' 총내려놓는 중남미반군들
2016/09/26
남미 최대반군 FARC 52년만에 콜롬비아 정부와 내전 종식키로
쿠바 등 혁명수출에 소극적,중남미 민주화에 혁명 열기 식어
지난 1964년 농민 봉기를 시작으로 52년간 정부에 항거해온 콜롬비아 최대반군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이 정부와의 역사적인 평화협정에 합의, 무기를 내려놓음으로써 쿠바 공산 혁명에 자극받은 중남미의 체 게바라식 게릴라 항전이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FARC가 사용했던 소총과 파편이 가득 찬 가스통, 가내 제작 지뢰와 박격포탄 등은 녹여져 평화 기념 조형물로 재탄생해 뉴욕과 쿠바, 콜롬비아 등지에 설치, 전시된다. 중남미에서 가장 오래 지속했던 무력 분쟁의 핵심 도구들이 평화의 상징으로 극적 반전을 이루게 되는 셈이다.
보고타에 있는 국립역사추모연구소의 곤살로 산체스 소장은 영국 일간 가디언에 "냉전 상황에서 시작됐던 위대한 게릴라 운동 가운데 마지막으로 이뤄진 합의"라고 평가하면서 "다른 사건들이 있을 수 있으나 전략적인 면에서 무장투쟁과 무장 유토피아는 FARC와 함께 막을 내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콜롬비아의 민족해방군(ELN)과 페루 및 파라과이 등지에 아직 소수 반군이 남아있으나 공산 반군에 의한 '혁명'의 시대는 지나갔다는 결론이다.
FARC은 마르크스와 마오쩌둥을 추종하는 다른 좌익 반군들과 마찬가지로 쿠바 공산 혁명을 이룬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로부터 '영감'을 받아 출범했다.
1956년 단지 80명의 추종자와 함께 어선을 타고 쿠바로 떠난 이들은 3년 후 쿠바의 풀헨시오 바티스타 우익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으며 이러한 성공은 이어진 냉전 상황과 군사쿠데타, 미국의 우익 독재정권 지지 등으로 중남미에 좌익 반군에 의한 혁명 선풍을 조성하는 계기가 됐다.
1960~70년대에 걸쳐 코스타리카를 제외한 중남미 거의 모든 지역에서 게릴라 반군들이 우후죽순처럼 태동했으며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반군(FSLN)과 브라질의 10월 8일 혁명군(MR*8), 베네수엘라의 민족해방 무장운동(FALN), 아르헨티나의 인민혁명군(ERP), 칠레의 혁명좌익운동(MIR), 우루과이의 투파마로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암살과 납치, 은행강도와 군사, 정치적 목표 공격 등을 수행해 우익 정권과 맞섰으며 엘살바도르와 과테말라, 니카라과에서는 대규모 유혈 내전으로 비화했다.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반군은 1979년 혁명에 성공해 쿠바에서 훈련을 받은 게릴라 출신의 다니엘 오르테가가 대통령에 선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혁명의 주역이었던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에서 처형된 후 쿠바와 소련이 혁명 수출에 소극적으로 돌아서면서 중남미의 혁명 열기는 주춤거렸다. 이들 지원국이 무기 공급을 감축하면서 무력에 의한 반군의 혁명 성공 가능성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1980년대 상당수 중남미국이 민주화하면서 반군들도 투표함으로 돌아섰다. 일부는 정부 고위직으로 진출했다. 비밀 공산 조직원으로 체포돼 고문을 받기도 했던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는 대통령에 선출됐으며 역시 투파마로 조직원이었던 호세 페페 무히카는 우루과이 대통령이 됐다.
이밖에 수십 명의 전직 게릴라들도 국회의원으로 변신했다.
민주화가 느렸던 일부 국가들에선 반군들의 활동이 계속됐으며 멕시코 같은 나라에서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은 1994년까지 무력 투쟁을 벌이다 현재는 평화적 수단으로 전향했다. 총탄보다는 보도문을 쏘아대는 21세기형 게릴라로 전향했다.
중남미에서 반군들의 활동이 가장 오랫동안 지속한 곳은 페루와 파라과이, 콜롬비아로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국제적인 마약 생산과 밀수의 거점들이다. 마약이 무기와 자금의 원천이 되어 왔다.
파라과이 인민군은 지난달 공격을 감행해 8명의 군인을 살해했으나 최근 지도자들을 잇달아 상실하는 등 20-150명의 지역 강도단으로 전락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때 상당한 무력을 과시했던 페루의 센데로 루미노소(빛나는 길)도 최근에는 그 수가 300명 미만으로 대폭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중남미 게릴라 단체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FARC는 냉전을 견뎌냈으나 전임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 재임 당시 미군 주도의 공격을 받아 대원들 수가 대폭 줄면서 밀림과 산악지대로 숨어드는 등 세력이 크게 약화했다.
약화된 FARC는 2012년 평화협상에 동의했으며, 당시 남미에 좌파정권이 득세하는 상황에서 평화적 정치를 통해 집권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협상 참여의 주요 배경으로 작용했다.
한편에선 이번 FARC와의 평화협정의 의미를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중남미센터의 맬컴 데이스는 FARC가 카스트로와 게바라로부터 영감을 받은 마지막 주요 게릴라 조직이기는 하나 아직 이보다 적은 2천 명 규모의 ELN이 남아있고 이들 게릴라가 그동안 중남미 정치 체제를 뒤흔들 만큼 강력하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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