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와 가해자'…52년 내전 아픔 투영된 콜롬비아 국민투표
2016/10/04
아들 찾아 헤매는 피해자, 믿어달라는 가해자…양극에 선 두 여성의 삶
콜롬비아의 평화협정 국민투표는 찬성 49.78%, 반대 50.21%라는 찬반 비율에서 보듯 평화에 대한 갈망과 지워지지 않은 앙금이 동시에 표출된 자리였다.
콜롬비아 최대 일간 엘 티엠포는 3일(현지시간) 정부와 최대 반군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이 52년 동안 벌인 내전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인터뷰를 소개하며 이같이 진단했다.
20년째 실종된 아들을 찾아 헤매는 피해자는 "평화를 바란다"면서도 정부와 FARC가 맺은 평화협정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졌고, 새 삶을 찾은 전직 반군은 "인간을 신뢰해야 한다"며 찬성표를 행사했다.
전날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콜롬비아 국민은 근소한 차이로 조금 더 인내하는 삶을 선택했다. 양 극단에 선 삶을 살아온 내전 피해자와 가해자는 여전히 각자의 평화를 찾는 중이다.
◇ 실종 아들 찾아 전국 헤맨 내전 피해자의 삶
콜롬비아 산탄데르 주의 블랑카 플로레스(60)는 1964년부터 시작된 내전의 피해자 중 한 명이다.
플로레스는 "내 아들은 1997년 11월 18일 보고타에서 실종됐다"며 "우리 가족은 아들을 살려서 보내주는 대가로 돈을 보내라는 요구를 받기 시작했고 며칠 후 FARC 조직원으로 확인된 이들이 '엘 카케타'에서 내 아들을 데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회상했다.
플로레스는 이미 20년 전이 된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는 고통 속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고 엘 티엠포는 전했다.
플로레스의 아들 헤수스 안토니오 로드리게스 플로레스는 실종 당시 24세였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원하던 직업인 닭싸움 심판으로 일하던 헤수스에게도 4살 난 아들이 있었으며 헤수스는 동생 3명과 힘을 합쳐 어머니를 부양했다고 한다.
플로레스는 "난 계속해서 아들을 찾아다녔다"며 "엘 카케타 근처의 유라야코라는 도시에서 아들을 봤다는 사람이 있어서 그곳으로 갔지만, 누구도 아들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푸투마요, 산 비센테 델 카구안 등 각지를 떠돌았다. 안드레스 파스트라나 전 대통령이 FARC와 평화협상을 하던 시기"라고 떠올렸다.
그는 "게릴라들과 직접 얘기해 '아들을 우일라 주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며 "아들을 찾아 전국을 떠돌다가 한 달 넘게 FARC에 억류되기도 했다"고 말을 이었다.
플로레스는 "붙잡힌 동안 배고픔을 참지 못했고 그들이 나를 잘 대우해줬다는 점을 고백해야겠다"며 "FARC는 내게 아무런 위험이 없고 내가 그저 아들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나를 풀어줬다. 이후론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돈이 없어서 그 지역으로 다시 가보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 법조인 꿈꾸는 전직 여성 게릴라 "인간에 대한 믿음 가져야"
플로레스의 아들 헤수스가 실종된 지 3년쯤 지난 2000년 당시 13세였던 시골 소녀 카탈리나 로하스(가명·28)는 가족을 부양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속에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찾아 FARC에 가입하기로 했다고 한다.
로하스는 "아버지는 나를 찾아다녔고 절대 내 결정에 동의하지 않으셨다"며 "FARC 가입 이후 아버지나 여동생들의 소식은 듣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모두를 위한 최선이라고 여겼다"고 회고했다.
로하스는 헤수스가 실종 이후 처음 억류됐던 곳으로 알려진 엘 카케타 지역의 FARC 기동부대에서 8년간 머물렀다.
플로레스가 아들을 찾아 전국을 떠돌고 있었을 즈음 로하스는 FARC 탈퇴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수많은 동료가 죽었기에 다음은 내 차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더욱이 우리(FARC)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고 가족을 만나고 싶기도 했다. 결국, 8년 만에 탈퇴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로하스는 탈퇴 이후 낮에는 일해서 돈을 벌고 밤에는 학위를 따기 위해 공부하는 주경야독의 삶을 시작했다.
2년 만에 학위를 딴 로하스는 음향·영상 프로덕션 공부를 했지만, 취업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로하스는 법조계에 진출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법학을 공부하기 시작, 현재 7학기째 재학 중이다. 그 사이 자신의 가족도 꾸리게 된 로하스는 현재 남편과 함께 한 살배기 아들을 키우고 있으며 졸업 후엔 행정법 전문가가 되겠다는 진로도 세웠다.
로하스는 "나는 국민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졌다"며 "누군가에게 기회를 주지도 않고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FARC가 거짓말을 한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콜롬비아는 모두를 위한 나라가 돼야 한다"며 "전장에서 죽은 이들도 콜롬비아인이며, 사회에 통합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국민투표 부결 이후…가해자 "나라 역행", 피해자 "마음의 평화 바랄 뿐"
2일 치러진 국민투표에선 접전 끝에 반대파가 승리했다.
지난달 성대한 서명식까지 치렀던 정부와 FARC의 평화협정은 이로써 원점으로 돌아갔다.
FARC 지도부에 대한 사면과 정치참여 허용 등 반대파의 비난을 초래한 평화협정 조항들은 무력화됐고 협상을 추진해온 후안 마누엘 산토스 대통령과 FARC 지도자 로드리고 론도뇨(일명 티모첸코)는 리더십의 위기를 맞았다.
로하스는 "반대파의 승리로 나라가 역행할 것"이라며 "콜롬비아인들은 가장 보호받지 못하는 계층의 자식들이 죽어가는 전쟁에서 다시금 산속으로 숨어든 FARC를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들을 잊지 못한 어머니 플로레스는 실종된 자녀를 찾는 어머니들을 돕는 '실종자들'이라는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살고 있다.
플로레스는 "국민투표 결과엔 관심 없다"며 "나는 전쟁 옹호자가 아니다. 그들이 내 아들을 돌려주고 내 마음의 평화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엘 티엠포는 "서로 다를지언정 두 여성은 용서와 화해를 바란다는 점에선 일치했다"고 전했다.
콜롬비아에선 반세기 넘게 이어진 내전으로 지금까지 사망자 22만 명, 이재민 800만 명, 실종자 4만5천여 명이 발생했다.
(보고타=연합뉴스) 김지헌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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