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델 카스트로 떠난 쿠바, '트럼프·경제개혁' 도전 직면
관리자 | 2016-11-30 | 조회수 : 1108
피델 카스트로 떠난 쿠바, '트럼프·경제개혁' 도전 직면
2016/11/30
라울·군부 통치 확고해 정치 변화는 적을 듯
지금의 쿠바를 만든 피델 카스트로가 떠난 이후 '피델 없는 쿠바'는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 주목받고 있다.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향년 90세를 일기로 숨을 거둔 지 나흘이 지난 29일(현지시간) 쿠바 수도 아바나에선 이틀째 그를 기리는 추모식이 이어졌다.
음악 틀기, 술집 영업, 야구 관람 등 유흥이 금지돼 거리는 조용한 가운데, 시민들은 추모식이 열리는 혁명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등 추모 분위기는 여전했다.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줄곧 쿠바의 최고 지도자였고 2006년 건강 문제로 공식 직위에서 내려온 이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카스트로 전 의장의 공백은 쿠바 역사의 큰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쿠바혁명 이후 12번째 미국 대통령' 트럼프 시대, 쿠바 운명은
카스트로 전 의장 생전에 마지막으로 등장한 차기 미국 대통령이 될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쿠바에 대한 부정적 태도는 쿠바의 앞날에 대한 불확실성을 더욱 키우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28일 "쿠바가 쿠바 국민과 쿠바계 미국인, 미국을 위한 더 나은 협상을 할 의지가 없다면 협정을 끝내버리겠다"고 공언했다.
대선 기간 오바마 행정부의 대쿠바 유화 정책을 비판해 온 트럼프 당선인이 쿠바가 가시적인 변화를 보이지 않을 경우 양국 관계를 국교 재수립 이전으로 돌리겠다고 경고한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의 강경 발언은 카스트로 전 의장이 사흘 전 타계하면서 공화당 주류에서 재부상한 미국의 대쿠바 기조 변화 요구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어서 쿠바 정부는 앞으로 과거 유화적이던 '오바마-민주당'이 아닌 '트럼프-공화당'의 강경파 미국 정부·의회와 상대해야 하게 됐다.
하지만 미국에서 쿠바로 향하는 민간 상업용 직항기가 운항을 시작하는 등 미국-쿠바 관계가 이미 일정 궤도에 오른 이상 '사상가'가 아닌 '비즈니스맨' 출신인 트럼프 당선인이 급격한 변화를 시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연구기관 '미주 대화'의 마이클 시프터 회장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일어난 변화를 되돌리려고 한다면 트럼프 당선인은 재계로부터 큰 압력을 받을 것"이라고 미국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에 말했다.
시프터 회장은 "트럼프 당선인이 경제 제재를 해제하지는 않겠지만, 재계가 원하는 조치를 그가 취소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히려 트럼프 시대를 맞아 쿠바 정부가 부담을 덜었다는 시각도 있다. 오바마 행정부 시기 국내적으로 터져 나오던 변화의 요구에 대응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는 것이다.
사안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오바마 시기엔 쿠바 측에서도 뭔가를 내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면 트럼프를 상대로는 받아낼 것이 적으니 오히려 투쟁의 노선이 선명해진 것"이라며 "쿠바 국민이 미국과 관계 회복을 선호한 것과 별개로 쿠바 지도층은 트럼프의 등장을 반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바나대학의 한 사회학 교수는 "쿠바는 혁명 이후 12번째 미국 대통령을 상대하고 있다"며 "트럼프의 성향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쿠바가 내적으로 어떤 경로를 선택하는지가 관건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라울과 군부 건재…라울 물러나는 2018년 후계자는
쿠바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인 쿠바의 정치 체제는 당분간 안정적으로 지속할 전망이다. 카스트로 전 의장은 이미 2008년 친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에게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넘겼기에 권력의 공백은 발생하지 않는다.
형을 비롯해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카밀로 시엔푸에고스 등 쿠바 혁명의 주역들과 함께 전선을 누볐던 동생 라울은 9년째 쿠바를 이끌면서 자본주의적 요소 도입을 토대로 한 경제개혁, 미국과의 국교 재수립 등을 지휘했다.
하지만 라울은 대미 관계 회복과 별도로 내부적 정치·사회 변동에는 관용을 보이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쿠바를 방문한 지난 3월 이후에도 반대파 체포, 정치적 의견 표출 억압, 민간 자영업 단속 등은 꾸준히 이어졌다.
시프터 회장은 "피델 사망 이후 경제 개혁파와 온건파 세대가 부상할 수는 있다"면서도 "정치 측면은 더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피델은 죽었지만, 그가 반세기에 걸쳐 건설한 사회주의 관료 체제와 그 체제를 뒷받침하는 핵심 요소인 군부가 건재하다는 점도 급격한 변동 가능성이 작게 점쳐지는 이유다.
라울 집권 이후 꾸준히 시장 주의적 요소가 확대되는 쿠바 경제는 사실상 군부가 운영하는 국영 기업들이 대부분 독점하고 있다. 산하에 57개 기업을 둔 지주회사 가에사(GAESA)가 쿠바 경제의 40%를 점유했다는 분석도 있다.
현상유지 세력이 강력한 만큼 쿠바의 실질적 변화는 피델이 아닌 라울 카스트로 현 의장 이후에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85세인 라울은 지난 4월 제7차 쿠바공산당 전당대회에서 '2018년 퇴임'을 못 박았다.
현재 쿠바공산당 내에선 미겔 디아스-카넬(56) 국가평의회 수석부의장, 브루노 로드리게스(58) 외무장관 등이 차기 선두주자로 꼽히지만, 이들은 카스트로 형제를 비롯한 '혁명 세대'의 목소리를 충실히 반영하는 역할에 머무르는 것으로 평가된다.
또 다른 유력 후보는 라울의 양자인 루이스 알베르토 로드리게스 로페스-카예하스 장군이다. 그는 군부가 운영하는 지주회사 가에사의 회장을 맡고 있다.
시프터 회장은 "라울의 자리에 '또 다른 카스트로'가 앉으리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며 "지금으로선 차기 의장직과 국가 운영 방향을 놓고 권력 투쟁이 벌어지리라는 점만 확실히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바나대학 앞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피델이 많은 것을 이뤘다고 말할 수 있지만, 보통 사람들의 삶은 그리 훌륭하지 않다"며 "다음 지도자 같은 것은 잘 모르겠다. 그저 졸업 이후 괜찮은 직장에서 일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바나=연합뉴스) 김지헌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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