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분리 완화와 비금융지주회사 육성 등 금융산업 전반에 걸친 구조개편 작업이 진행되면서 정부가 벤치마킹하는 해외 모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금융정책 주관부처인 금융위원회는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 스페인 산탄데르은행, 프랑스 악사(AXA), 네덜란드 ING그룹 등 글로벌 기업들의 사례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 GE는 지주사 모델 = 6일 정부 당국과 금융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금산분리 완화와 함께 한국형 금융지주회사의 벤치마킹 모델로 GE를 주목하고 있다.
GE의 경우 지주회사인 GE 아래 제조업 부분 자회사와 금융 부문 자회사를 두고 있다.
1980년 이전까지만 해도 가전.발전 등 제조업 부문이 성장을 이끌었지만 점차 무게 중심 축이 금융 부문으로 옮겨가고 있다.
제조업 자회사로 소재부품, 에너지, 방송, 의료장비 등이 있고, 금융부문의 자회사로 GE캐피탈을 두고 기업금융과 소비자금융 등의 사업을 벌이고 있다.
GE는 금융과 비금융 부문 사이에 차단벽을 쳐 출자와 거래를 철저히 분리하고 있다.
제조업과 금융 부문을 동시에 거느려 시너지 효과를 내되 내부적인 금산분리를 엄격히 하는 방식으로, 한국의 재벌에게도 적용해볼 만한 구조인 것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GE의 경우 지주회사만 상장이 돼 있고 자회사는 모두 비상장사로서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며 "순환출자도 전혀 없어 가장 이상적인 구조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한국의 경우 대부분 자회사들이 상장돼 있어 GE와 같은 지주회사로 가는 것은 현재로선 어렵다"고 지적했다.
◇ 스페인 산탄데르銀 눈길 = 금융위 임승태 사무처장은 최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스페인 산탄데르은행의 사례를 거론해 눈길을 끌었다.
산탄데르은행은 1980년대에만 해도 세계 150위권, 스페인 6위권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말 기준 총 자산 1천300조원의 세계 8위 은행으로 급성장했다.
산탄데르은행은 1990년대 초 스페인 바네스토은행에 이어 센트럴히스파노은행을 인수해 중남미 진출의 교두보를 구축했다.
중남미 사업이 안정 궤도에 오르자 영국, 독일 등으로 세력을 확대했다.
임 처장은 산탄데르의 사례를 통해 ▲언어와 문화적 동질성이 있는 나라에 먼저 진출하고 ▲해외 진출은 인수.합병(M&A)을 통하며 ▲강점이 있는 소매금융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나은행은 산탄데르은행의 이런 장점에 주목하며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고 있다.
◇ 보험 중심 지주회사 모델 = 보험 중심의 지주회사 모델도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금융위 업무보고 자리에서 AIG, 푸르덴셜, 악사, ING 등 세계적인 보험그룹의 사례가 논의됐다.
미국계 AIG는 세계 130여 지역에 거점을 둔 세계 4위(시가총액 기준)의 글로벌 보험그룹이다.
총괄 지주회사 밑에 손해보험, 생명보험.연금, 금융 서비스, 자산운용 등 4개의 중간 지주회사를 두고 다시 그 아래에 개별 회사가 가지를 치는 구조를 갖고 있다. 해외 자회사도 중간 지주회사 밑에 딸려있는 형태다.
AIG는 이런 지배구조를 통해 끊임없는 M&A로 대형화를 거듭해 왔다. 피인수 기업은 기존회사와 통합하지 않고 자회사로 끌어 안았다.
그러나 다양한 계열사들을 거느리면서도 한결같이 금융업종에 국한돼 있다는 게 특징이다.
ING는 네덜란드 최대 보험사인 내셔널-네덜란덴과 3위 은행인 NMB 포스트뱅크그룹이 합병한 금융 그룹이다. 네덜란드가 유럽에서 가장 먼저 은행.보험 겸업을 허용하면서 1991년 탄생했다.
모 지주회사인 ING그룹 N.V. 아래에 은행 중간 지주회사와 보험 중간 지주회사가 있는 형태다. 2000년대 초반까지 대규모 인수 작업을 거쳐 글로벌 그룹으로 성장했다.
프랑스계 악사 역시 보험 중심 금융 그룹으로 1980년대 중반 이후 공격적인 M&A 전략으로 세계적인 회사로 컸다. 프랑스의 지주회사가 모회사이고, 각국에 중간 지주회사를 만든 뒤 자회사를 두고 사업을 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지주회사 체제를 통해 활발한 M&A로 덩치를 키우며 전 세계로 사업 무대를 넓혀온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사업 영역은 대체로 금융업의 테두리에 머물렀다.
특히 대형사를 중심으로 대체로 산업자본과 얽혀 있는 국내 보험업계와는 여건이 다르다.
그래서 보험이 주력이면서도 제조업을 겸하는 버크셔 헤서웨이 같은 회사가 모델로 언급되기도 한다. '투자의 귀재'로 유명한 워런 버핏이 운영하는 회사다.
자동차보험사인 게이코(GEICO)를 주축으로 하지만 의류 및 신발 제조.유통, 건축자재 제조.유통, 생활필수품 도매, 가구.가전, 보석 등의 자회사도 있다.
이웃 일본의 소니 금융지주회사도 산업자본으로 설립된 금융지주회사다. 소니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산하에 생명보험, 손해보험, 인터넷 은행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현재로선 다양한 해외 모델의 장단점을 살펴보는 정도"라며 "좀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국내 여론 등을 지켜보며 국내 금융산업의 구조 개편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