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부격차 확대에 다시 발목 잡힌 칠레
2010.07.29 08:17
칠레 빈부격차 확대
(산티아고=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2009년 칠레 내 소득 상하위 10%의 소득 격차가 42.6배를 기록, 지난 2006년의 31.3배에 비해 크게 늘어나며 칠레 내 빈부격차가 다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다. 사진은 산티아고 시내 로바르네체아 구의 고급 주택가(위)와 세로나비아 구의 판자촌. 2010.7.29. mihye@yna.co.kr
상.하위 10% 소득 격차 46.2배
칠레 수도 산티아고 동쪽에 있는 로바르네체아 구(區). 깨끗하게 정돈된 길 양옆으로 담쟁이로 덮인 높은 벽과 대문이 늘어서 있다. 대문마다 보안업체의 마크가 붙어 있는 이곳은 미국이나 유럽의 여느 부촌과 비슷한 분위기를 낸다.
이곳에서 마포초 강을 따라 서쪽으로 차를 타고 40분쯤 가면 나오는 세로나비아 구는 같은 도시에 있는 곳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로바르네체아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마포초 강변에 모여있는 구멍이 숭숭 뚫린 판잣집은 밖에서 봐도, 안에서 봐도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모습이다.
강에서 떠내려온 고철과 플라스틱 쓰레기를 주워다 고물상에 내다 파는 것이 이 동네 주민들의 거의 유일한 수입원이다.
화장실과 욕실도 없는 판잣집에서 남편, 두 아이와 함께 사는 가브리엘라 칼데론(27) 씨는 "고정적이지 않은 남편의 수입과 월 2만9천 페소(약 6만6천원)의 정부 보조금으로 버텨가고 있다"며 "변변한 직업이 없어 생활이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고 말했다.
칠레는 올해 초 남미 최초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을 정도로 남미에서 경제가 가장 안정된 국가 중 하나지만 두터운 빈곤층과 빈부격차라는 남미 전반의 고질병에서는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몇 년간 사회복지 비용을 확대하며 빈곤층 해소를 최대 과제로 삼아왔던 칠레에 최근 빈곤층과 빈부격차 확대를 보여주는 수치가 연이어 발표되면서 비상이 걸렸다.
3년 주기로 실시돼 최근 발표된 '국가 사회경제 특징(CASEN)'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09년 칠레 내 소득 상위 10%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295만1천815 페소(약 674만원)로 하위 10% 가구 평균소득 6만3천891 페소(약 14만6천원)보다 46.2배나 많았다.
이전 수치인 2006년의 31.3배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으로 1990년 이후 최고치다.
칠레 빈부격차 확대
(산티아고=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2009년 칠레 내 소득 상하위 10%의 소득 격차가 42.6배를 기록, 지난 2006년의 31.3배에 비해 크게 늘어나며 칠레 내 빈부격차가 다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다. 사진은 산티아고 시내 고급 쇼핑몰 알토 라스콘데스(왼쪽)와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재래시장인 베가 시장.
2006년 대비 상위 10%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9.1% 증가한 데 반해 하위 10% 가구의 소득은 26.3%나 줄어든 데 따른 것이다.
상위 10%가 벌어들인 돈이 국민총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006년 38.6%에서 2009년 40.2%로 증가했다. 반면 하위 10%는 국민총소득 파이의 100분의 1조각(0.9%)을 나눠먹은 꼴이었다.
빈부격차의 확대와 더불어 빈곤층의 절대 규모도 함께 늘었다.
이에 앞서 발표된 같은 연구 자료에 따르면 2009년 기준 칠레 내 월소득 6만4천 페소 미만의 빈곤층은 256만4천명으로, 전체 인구의 15.1%를 차지했다. 2006년에 비해 1.4%포인트 늘어나 20년 만에 처음 증가세를 보인 것이다.
지난 2월27일의 대지진 당시 빈곤층의 피해가 컸기 때문에 이를 감안해 다시 집계한다면 빈곤층의 규모와 빈부격차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칠레 내 빈부격차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10여 년간 완만하게나마 해소돼 왔다는 점에서 예상치 못한 이번 추세 반전에 칠레 사회도 적잖은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칠레 정부는 이번 수치가 지난해 경기 침체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면서도 고용 창출과 극빈층 가정 집중 지원, 사회복지를 관장하는 부처 신설 등 '가난과의 전쟁'에 나서기 위한 정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펠리페 카스트 칠레 계획부 장관은 일간 엘 메르쿠리오와의 인터뷰에서 "빈부격차 확대는 경제 위기에 따른 고용 불안이 취약계층에게 더욱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며 "올해는 지난 4년간 평균의 2배가 넘는 20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예정이기 때문에 이를 감안하면 연말쯤에는 수치가 다시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산티아고=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mihy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