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랄레스 방한 충격 … 중•일•프 ‘당근 반격’ 거셀 듯
2010.09.07 01:40
리튬 보물창고’ 볼리비아에 가다 <하>
자원 각축장된 ‘리튬 트라이앵글’
지난달 19일(현지시간)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의 일본•중국•프랑스 공관과 현지법인은 발칵 뒤집혔다. 소문으로만 돌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의 한국 방문 일정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특히 모랄레스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먼저 추진했다가 총리가 바뀌는 바람에 선수를 빼앗긴 일본 진영엔 비상이 걸렸다.
볼리비아 포토시 우유니 염호에 설치된 리튬 추출 실험시설. 볼리비아 광물자원공사(코미볼)는 독자적으로 리튬 추출 기술을 얻기 위해 파일럿 플랜트 설치와 함께 이 같은 실험시설을 우유니 염호 곳곳에 설치해 놓았다.
볼리비아 포토시 우유니 염호에 설치된 리튬 추출 실험시설. 볼리비아 광물자원공사(코미볼)는 독자적으로 리튬 추출 기술을 얻기 위해 파일럿 플랜트 설치와 함께 이 같은 실험시설을 우유니 염호 곳곳에 설치해 놓았다.
게다가 “한국이 우유니 리튬 개발 사업권을 따냈다”는 일부 한국 언론의 오보가 나오자 볼리비아 광업부와 국영 광물자원공사 코미볼엔 전화가 빗발쳤다. 볼리비아 정부 관계자는 “일본•중국•프랑스 등으로부터 문의와 항의 전화가 쇄도해 일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며 “하루 종일 오보라고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다”고 말했다.
광물자원공사(KORES)가 한국 4개 기업과 합작으로 볼리비아에 세운 현지법인 코로코브레 문영환 대표는 “우유니 리튬 개발 사업을 둘러싼 세계 각국의 각축전이 워낙 뜨겁다 보니 서로 견제도 치열하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원한 현지 관계자도 “한국에 일격을 당한 일본이 조만간 모랄레스 대통령을 일본으로 초청할 것으로 안다”며 “일본의 반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일본은 볼리비아 정부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당근 전술’도 구사하고 있다. 우유니가 있는 포토시 주에 지열발전소를 짓고 지하수를 개발하며 15개 학교를 설립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포토시는 우유니 개발 사업 지연으로 주민 불만이 고조돼 볼리비아 정부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지역이다. 일본이 물량 공세로 주민 불만을 무마해 주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무기를 앞세워 군사력 강화를 원하는 모랄레스 대통령의 구미를 당기고 있다. 자동차•배터리 회사로 이루어진 프랑스 컨소시엄은 볼리비아에 2차전지 공장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리튬을 겨냥한 세계 각국의 각축전은 볼리비아뿐 아니라 칠레•아르헨티나로도 확산됐다. 볼리비아•칠레•아르헨티나가 접한 곳은 세계적인 염호(鹽湖)가 몰려 있는 ‘리튬 트라이앵글’ 지역이다. 특히 칠레 아타카마 사막의 염호는 이미 세계 1위 리튬 생산광구다. 아직 개발하지 않은 서쪽 염호 개발 사업에 KORES와 삼성물산이 지분 참여를 추진 중이다.
아르헨티나의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에선 한국과 중국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이곳 역시 한쪽에선 이미 리튬이 생산되고 있어 전기•용수•도로 같은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 KORES•GS칼텍스•LG상사로 이루어진 한국 컨소시엄은 캐나다 회사와 옴브레 무에르토의 살데비다 리튬광 탐사사업에 투자하기로 했다. 이 사업에 눈독을 들여온 중국도 지분 확보 경쟁에 나선 상태다.
리튬 트라이앵글을 비롯해 자원 개발 경쟁이 뜨거워지면서 요즘 페루 리마는 세계적인 자원개발 전문회사의 본거지로 부상했다. 에이멕•벡터•골든미네랄스•BPZ 등 세계적인 자원탐사 전문회사가 앞다퉈 리마에 진출했다. KORES 박영후 리마 사무소장은 “KORES가 리마에 진출한 건 2007년”이라며 “서구는 물론 일본•중국에 비해 다소 늦었다”고 말했다.
그나마 한국은 지난달 30일 페루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어 페루 진출의 활로를 뚫었다. KOTRA 박종근 리마 센터장은 “페루가 외국인투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수도 리마는 남미 자원 전쟁의 각축장으로 떴다”며 “자원 확보 경쟁에 나서려면 리마에 든든한 교두보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와 기업의 리마 진출이 다소 늦긴 했지만 한•페루 FTA가 타결돼 국내 기업 진출이 전보다 쉬워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앙일보 라파스(볼리비아)•리마(페루) = 정경민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