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지역 경제지형에 변화 조짐
2011.04.26 06:21
메르코수르.CAN.ALBA 이어 '태평양 블록' 출범
브라질 "역내 영향력 흔들리지 않을 것"
중남미 지역의 경제 지형에 변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과 함께 남미의 양대 경제블록으로 평가되던 안데스공동체(CAN)가 급속도로 힘을 잃고 있고, 중남미 좌파블록인 미주(美洲)를 위한 볼리바르 동맹(ALBA)의 세 확산이 주춤하는 사이 다음 달 새로운 블록이 출범할 예정이다.
25일 브라질 일간지 폴랴 데 상파울루에 따르면 칠레와 페루, 멕시코, 콜롬비아 등 4개국 정상들은 다음 달 2일 페루 수도 리마에서 만나 '심층통합지대'(AIP)라는 이름의 새 블록 탄생을 선언할 예정이다.
'태평양 블록'으로도 일컬어지는 AIP는 인구와 경제력 측면에서는 메르코수르에 맞서고, ALBA와는 이념적인 대척점을 형성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4개국의 태평양 연안이 1만6천㎞에 이르는 AIP는 인구 2억456만명, 국내총생산(GDP) 2조5천2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인구 2억300만명에 GDP 2조1천940억 달러인 브라질보다는 크고, 인구 2억5천451만명에 GDP 2조8천700억 달러인 메르코수르에 비해서는 작은 규모다. 메르코수르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등 4개국으로 이루어져 있다.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 쿠바, 니카라과, 도미니카공화국 등 8개국으로 구성된 ALBA는 인구 6천973만명에 GDP는 6천422억1천만 달러에 불과해 AIP에 견주기는 어렵다.
AIP는 브라질, 그리고 브라질이 주도하는 메르코수르와 역내 영향력을 다투겠다는 점을 블록 출범 목표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다.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은 지난달 미국 뉴욕타임스(NYT)와의 회견에서 "새 블록의 전략적 목적은 브라질과 힘의 균형을 이루려는 것"이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 브라질리아 연방대학(UnB)의 아마도 세르보 교수(국제관계학)는 "브라질이 압도적인 역내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주변국들이 힘을 합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AIP는 또 '자유블록'을 자처하며 ALBA와는 성향을 달리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AIP 4개국 간에는 페루-멕시코 사이를 빼고는 상호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된 상태다. 또 콜롬비아를 제외한 3개국이 모두 미국과 FTA를 체결했다.
반면 ALBA는 미국 주도의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창설 움직임에 맞서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주도로 2004년 12월 결성됐고 2006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이는 AIP와 ALBA가 FTA에 대해 근본적으로 시각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설명해 준다.
미국 외교위원회의 섀넌 오닐은 "ALBA는 매우 시끄럽기만 할 뿐 실질적인 성과가 없는 블록"이라면서 FTA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AIP가 ALBA보다 훨씬 더 실속있는 블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브라질 정부는 그러나 AIP 출범에 크게 개의치 않겠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블록 구성을 주도한 페루의 알란 가르시아 대통령이 퇴임을 앞둔 데다 6월 초 대선 결선투표에서 친(親) 브라질 성향인 중도좌파 오얀타 우말라 후보에게 정권이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또 친미(親美) 성향의 산토스 대통령은 차베스 대통령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고, 미국-콜롬비아 FTA의 미국 의회 인준이 늦어지는 데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브라질은 그동안 메르코수르의 확대를 위해 콜롬비아, 칠레,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에 대해 가입을 권유해 왔으며, 베네수엘라는 이미 가입 절차를 밟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AIP가 메르코수르에 대항하는 블록이 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며, 따라서 브라질이 중남미 지역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는 게 브라질 정부의 판단이다.
다만, AIP가 최근 들어 유명무실화하고 있는 CAN을 대체할 가능성은 있다.
CAN은 1969년 칠레, 볼리비아,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6개국의 참여로 발족했다.
그러나 칠레가 1978년 볼리비아와의 외교 마찰을 이유로 탈퇴하고, 베네수엘라는 콜롬비아와 페루가 미국과 자유무역협상을 진행하자 2006년 탈퇴를 선언하고 메르코수르 가입을 추진해 왔다. 베네수엘라는 지난 22일 CAN 탈퇴를 공식 선언했다.
여기에 콜롬비아와 페루가 AIP에 참여하면서 CAN은 사실상 와해의 길로 접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따라 브라질에 이어 중남미 2위 경제국인 멕시코가 가세한 AIP가 제 모습을 갖추면 메르코수르와 AIP가 대륙을 양분하는 블록으로 등장할 전망이다.
(상파울루=연합뉴스) 김재순 특파원 fidelis21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