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이익공유 포퓰리즘 정책에 골병든 에콰도르
2012.2.6
중남미 자원부국의 빈곤국 추락 현장취재
#1. “트라바호 포르 파보르(일자리를 부탁합니다).” 1일(현지 시간) 오전 7시 에콰도르 에스메랄다스 시 근처 국영기업 ‘페트로 에콰도르’의 정유 플랜트 공사 현장. 출근길 근로자들과 트럭이 뒤엉킨 사이로 20대 청년 10여 명이 정문 앞에 나란히 모여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노무관리를 맡고 있는 건설사 간부를 보자마자 그를 붙들고 일자리를 간청했다. 이 플랜트는 35년 전인 1977년에 지어졌지만 정부 재정악화로 단 한 번도 개·보수가 이뤄지지 않아 곳곳에 녹이 심하게 슬었다. 최근 외국 건설업체들이 이곳의 보수공사를 진행하면서 1000여 명의 근로자를 현지에서 채용했다. 그러나 실업률이 워낙 높다 보니 뽑히지 못한 동네 청년들이 매일 몰려와 무작정 일자리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건설회사 관계자는 “간혹 사고로 결원이 생기면 이들 중 몇 명을 뽑아 일당을 챙겨준다”며 “한때 일자리를 요구하는 피켓 시위까지 벌어졌다”고 전했다.
#2. 외국계 기업 A 사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올가 에스테르 토레스(가명·40) 씨는 지난해 회사에서 받은 ‘종업원 이익공유’ 보너스로 에스메랄다스 시내에 근사한 벽돌집 한 채를 구했다. 인구의 70% 이상이 빈민층인 이 지역에서 판잣집이 아닌 벽돌집은 고급주택에 해당된다. 토레스 씨는 “올해 보너스를 또 타면 아이들 대학 입학금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A 사는 토레스 씨를 비롯해 직접 고용한 근로자들에게 임금과는 별도로 1인당 평균 4200달러(약 470만 원)가량을 지난해 일시불로 지급했다. 에콰도르 노동법에 규정된 ‘종업원 이익공유제’ 조항에 따른 것이다. 사무보조 혹은 환경미화원이 대부분인 이들은 근무성과와는 상관없이 평균 월급(400달러)의 10배가 넘는 금액을 한 번에 챙길 수 있었다.
중남미의 자원부국 에콰도르에선 청년 실업자들이 줄을 서서 일자리를 구걸하는 동시에 일부 근로자들이 거액의 ‘보너스 잔치’를 벌이는 모순이 벌어지고 있다. 현지 기업체들은 반미 좌파 정치인으로 꼽히는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의 포퓰리즘 정책이 외국인들의 투자유치를 가로막고 고용을 늘리는 데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에콰도르 노동법에 따르면 1999년부터 시행된 ‘종업원 이익공유제’에 따라 외국계를 포함한 모든 기업은 연간 세전(稅前) 순이익의 15%를 이익 공유 차원에서 성과와 상관없이 전 종업원에게 일괄적으로 나눠주도록 돼 있다. 이 가운데 10%는 고용기간, 5%는 부양가족 수에 비례해 액수가 정해지며 중간에 그만둔 직원들에게도 회사가 직접 돈을 전달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외국계 기업들은 본사로 이윤을 송금할 때 전체 금액의 5%를 추가로 세금으로 떼인다. 최근에는 석유산업 국유화를 추진하면서 외국 생산기업들의 수익을 줄이고 각종 부담을 크게 높여 일부 오일 메이저가 사업 철수를 단행하기도 했다. 한 외국계 기업 관계자는 “에콰도르 정부의 과도한 포퓰리즘 정책 때문에 외국계 기업에 대한 투자유치가 갈수록 난관에 부닥치고 있다”며 “산업기반이 극히 취약한 이 나라에서 외국인 투자 감소는 곧 고용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에콰도르는 자국(自國)에서 나는 원유를 수출해 외국에서 휘발유를 수입할 정도로 제대로 된 기업체가 별로 없다.
정부가 경제정책을 효율적으로 집행하지 못하면서 에콰도르는 2008년에 이어 2009년에도 연이어 대외채무에 대한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을 하는 등 심각한 경제난에 봉착한 상태다. 그러나 이 나라는 1970년대 중반만 해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00달러대로 한국과 큰 차이가 없었다.
이 때문에 1970, 80년대 이곳으로 이민을 온 우리 교포 수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경제여건이 더 악화되면서 우리 교포들 가운데 한국으로 돌아오거나 인근 국가로 다시 이민을 떠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현지에서 의류 수입업체를 경영하고 있는 김무송 씨(가명)는 “옷장사로 돈을 모은 교민들이 갈수록 커지는 세금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페루 등 인근 국가로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에스메랄다스=김상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