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온두라스 사태의 교훈
2012.2.19
온두라스의 코마야과 교도소에 불이 나서 350명이 넘는 재소자가 죽었다고 외신이 전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2004년에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이 나라 제2도시인 산페드로술라의 교도소에서도 화재사고가 일어나 107명이 죽었다. 그러니 교도행정 차원의 사고사가 아니라 구조적인 시각에서 이 사건을 봐야 할 필요가 있겠다. 미주인권위원회의 부위원장 로드리고 에스코바르는 이번 비극을 “국가의 완전한 부재”의 결과로 “예고된 죽음”이라고 비난한 바 있었다.
중남미의 교도행정은 열악하기로 유명하다. 감옥은 늘 정원을 초과하고, 음식물 공급과 의료 서비스는 형편없다. 재활과 재통합 정책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교도소를 사실상 다스리는 권력은 국가가 아니라 마피아나 재소자들인 경우도 많다. 그 가운데 가장 악명이 높은 나라들이 바로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이다.
온두라스에서 산다는 것은 전쟁터에서 사는 것과 진배가 없다. 하루에 스무 명 정도가 살해당한다. 2011년에 800만 인구의 이 나라에 살인치사자가 6000명을 넘었다. 2008년에는 3418명 정도였는데, 불과 3년 만에 80%가량 증가했다. 인구 10만명당 살인치사율은 86명으로 무척 높다. 대체 왜 이렇게 살인이 증가했을까? 관찰자들은 2008년 쿠데타가 일어난 뒤 합법적인 정부가 붕괴되자, 그 틈새에 마피아들의 권력이 대폭 커져서 그렇다고 한다. 멕시코에서 마약전쟁이 지속되자, 마피아 비즈니스의 중심이 중미로 재편되고 있고, 이 가운데 가장 취약한 국가구조를 지닌 온두라스가 좋은 먹잇감이 되고 있다.
마약전쟁은 마치 고슴도치를 방망이로 치는 게임을 하는 것 같다. 콜롬비아 코카인의 유입을 줄이기 위해 미국은 플랜 콜롬비아를 입안했다. 코카 밭을 소각하고, 마약거래를 강력하게 단속하자, 거래 중심지는 멕시코로 이동했다. 다시 미국은 플랜 메리다를 내세워 멕시코에서 마약전쟁을 강력하게 수행하고 있다. 멕시코의 칼데론 정부는 연간 8000명 이상의 인구살상을 감내하면서 인기도 없고 승리도 불가능한 마약전쟁을 임기 내내 이끌었다. 이제 멕시코에서의 전쟁 여파로 비즈니스 환경이 열악해지니 중미로 마약거래 네트워크가 재정비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중미의 살인치사율은 최근 올라가고 있다. 온두라스에 이어 엘살바도르가 66명, 과테말라가 41명 수준이다. 심지어 “중미의 스위스”라는 코스타리카조차도 최근 11명을 기록해 마약전쟁의 여파를 몸소 느끼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경제적 위기와 자연적 재해가 심각한 중미가 마약의 중간 기착지가 되면, 가뜩이나 구조적 위기에 처한 국가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재난이 터질 수 있다. 중미에 각종 마약의 창고들이 생긴다면, 마약 일부는 틀림없이 현지 사회에 풀려나올 것이다. 실업과 만성적인 빈곤에 지친 사람들은 쉽게 마약 소비에 현혹이 될 것이고, 청소년들은 쉽게 조직범죄에 뛰어들 것이다. 범죄율은 더욱 증가할 것이고, 교도소는 수용할 수도 없는 과잉 인구를 가두게 될 것이다. 결국 중간 기착지 사회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심리적 상처를 겪게 될 것이다. 이미 허약해진 국가는 이런 홉스적 상황을 종식시킬 능력도 자원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제2, 제3의 코마야과 비극이 재발할 것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먼저 미국 또는 멕시코의 마약전쟁이 일국적 차원에서 아무리 성공적일지라도 결코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미 마약 카르텔은 국제적 네트워크를 가진 유연 반응 체계로 변신했다. 정책효과가 별로 없는 생산과 공급 차원의 대책에다 엄청난 예산을 퍼붓느니, 소비와 재교육 차원으로 정책의 축을 과감히 이동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또 현지 농촌사회가 코카 잎을 재배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영농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는 것도 다급한 일이다.
경향신문/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이성형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