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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피노체트 망령 되살아나…추종자 vs 반대자 충돌로 소요(6.11)
관리자 | 2012-06-11 |    조회수 : 1250
칠레, 피노체트 망령 되살아나…추종자 vs 반대자 충돌로 소요

2012.6.11

칠레의 오랜 군사독재 철권정치의 주인공이었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96명의 정적들을 감금하고 고문, 살해했던 수도 산티아고 중심가 롱드르 38번지, 한때 선혈이 낭자했던 그 벽 위에는 '피노체트여, 너의 역사는 죽어 없어져라'는 포스터가 지금도 붙어 있다.

그러나 피노체트는 살아 돌아왔다. 일요일인 10일 피노체트 충성파들이 2006년 그의 사망 이래 최대의 군중 집회를 열고 시위에 나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운집한 군중들의 항의 집회와 반대 시위로 대규모 충돌이 일어났고 이어서 언론과 표현의 자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해 전국적인 논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피노체트 추종자들이 그의 독재정치를 미화하는 영화 시사회를 열려고 하자 이를 반대하고 무산시키기 위해 모여든 반 피노체트 항의 시위자들을 향해 경찰은 최루탄과 물대포 세례를 퍼부었다. 이어 양쪽 군중의 충돌과 경찰의 해산 작전 과정에서 22명의 시민들이 부상했고 64명이 체포됐다고 경찰 당국은 밝혔다.

문제의 영화는 피노체트를 공산주의로부터 나라를 구한 구국 영웅으로 묘사하면서 그에게 부패와 인권관련 죄목을 씌워 복수에 나선 공산주의자들 때문에 억울한 죽음을 맞았다는 내용으로 속칭 '피노체티스타'로 불리는 열성 지지파들이 극장에 모여 칠레 국기와 그의 사진을 흔들었다.

피노체트의 손자인 퇴역 대위 아우그스토 피노체트 몰리나가 무대에 오르자 기립박수가 오랫동안 이어지기도 했다. 이 행사를 주관한 퇴역 육군 장교 후안 곤잘레스는 자기 여동생인 프란치스카가 공개석상에서 피노체트군에게 고문당한 경험을 이야기했는데도, 그런 얘기는 " 모두가 빨갱이들이 지어낸 거짓말과 사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수많은 고문과 살인은 모두 좌파 반군 소탕 작전 당시 전투로 인한 사상자라는 것이다.

피노체트 독재 시절 살해, 고문, 실종당한 수많은 사람들의 가족, 친지들과 10여개 인권단체들은 세바스티안 피네라 대통령에게 공문을 보내 문제의 행사를 금지하도록 요청했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궁 대변인 안드레스 차드윅은 TV 성명을 통해서 피노체트 추모 행사 조직자들도 표현의 자유가 있기는 하지만 "인권 유린의 범죄를 저지른 과거 정권을 지지한 것에 대해 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한 피노체트에 대해 추모와 찬사를 보내는 것은 "불필요한 짓"이라고 논평했다.

피노체트 추모 행사는 그 동안 칠레 정치에서 여러 가지 파벌이 등장한데다가, 국가의 부를 공평하게 배분하고 무상 교육, 환경 보호 등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하라는 거리 시위 등 국민의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칠레는 피노체트와 그의 1973~1990년의 독재정치에 대해 극단적인 양극화가 이뤄지고 있는 나라이다. 그의 짙은 수염과 말끔한 군복, 검은 안경의 모습은 물론이고 피노체트의 이름만 들어도 새파랗게 움츠러드는 사람들은 국회를 폐쇄하고 모든 정당을 불법화한 뒤 수천 명의 민주 인사들을 추방하고 학살한 그의 악행을 악몽처럼 기억하고 있다.

반면 부유층을 중심으로 한 그의 추종자들은 칠레의 경제 성장과 발전이 피노체트의 덕이라 여기며 실패한 사회주의 국가가 되지 않도록 구국의 결단으로 나라를 접수한 영웅으로 받들고 있다.

현 칠레 정부는 보수파인 독립민주연합과 골수 우파인 국가재건당의 연립정부로 1990년 칠레의 민주화 이래 집권한 첫 보수 정권이다. 이번 피노체트 추모 집회라든가 곤잘레스 같은 주동자가 나서게 된 배경도 2010년 우파 집권 후의 사회 변화를 반영한다는 것이 정치 분석가들의 의견이다.

그러나 현 피네라 정부는 지난해에도 피노체트 집권 당시 희생자 9800명을 추가로 확인, 당시 고문, 살해, 투옥된 사람이 총 4만18명임을 공식 확인해준 바 있다. 이중 살해된 사람만 3095명이고 그중 1200명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살인으로 추정되는 실종자와 관련, 700명의 군 장교들이 재판에 회부됐고 그중 70명이 반인권 범죄로 복역 중이다.

발파라이소 대학의 정치학교수 기에르모 올츠만은 피노체트와 관련된 칠레 사회의 충돌 사건을 계기로 피노체트 시대에 대한 엄중한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칠레는 이로써 제2의 성숙한 사회 발전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피노체트 문제는 더 이상 양탄자 밑에 숨겨놓지 말고 테이블 위에 내놓고 논의해야 할 문제다. 피노체트에 관한 과격한 소수 의견이라도, 대다수 국민들의 의견은 아니지만 일단 논의를 거쳐 걸러 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산티아고(칠레)=AP/뉴시스】차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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