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T-1훈련기 페루 수출 성사까지 막후협상전 치열>
2012.11.10
최근 페루가 중남미 국가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산 기본훈련기인 KT-1을 대량 구매하기로 결정하기까지
양국 간에 치열한 협상전이 반복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페루 정부가 KT-1 구매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건 작년 6월. 오얀타 우말라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부터다.
노후된 공군 훈련기를 교체하기를 바랐던 우말라 대통령은 외국에서 새 훈련기를 도입하되 기술이전을
해 줄 수 있는 나라를 물색했고, 한국은 현지 대사관을 통해 페루 정부의 구미를 자극할 만한 제안을 내놨다.
판매하는 KT-1 20대 중 4대만 한국에서 만들어 납품하고, 나머지 16대는 페루에서 현지 군수 업체 등과
공동 생산하며 항공기술 이전을 보장한 것.
이 같은 안에 관심을 보인 페루 정부는 이후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대형 방위사업인 만큼 한국 정부의
공식 보증을 계약 체결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다.
정부 대 정부 거래로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KT-1은 민간기업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생산하는 것으로 한국 정부로서는 국내법상 페루의
요구처럼 직접 보증에 나설 수는 없는 문제였다.
우말라 대통령은 수차례에 걸쳐 박희권 주 페루대사를 대통령궁으로 불러들여 정부 보증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했고, 자신이 시간이 없을 때에는 박 대사 관저까지 비서관을 보내 지속적으로 정부 보증을 요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정부의 보증문제는 구매계약 성사 여부를 가를 수도 있었던 핵심 쟁점이었지만 현지 대사관이 막판에
수완을 발휘하면서 해결의 접점을 찾게 됐다.
한국 정부가 직접 계약 보증을 할 수는 없지만 정부 간 거래에서 계약 당사자로 지정돼 있는 코트라(KOTRA)가 페루 국방부와 서명을 하되 국가 기관인 방위사업청이 계약 이행을 철저히 감독한다는 내용을 계약 문안에
포함키로 한 것이다.
또 페루 정부가 구매대금을 KAI에 직접 지불하지 않고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을 통해 돈을 지급하는 안을 더해
마침내 페루 정부로부터 '오케이' 사인을 받아냈다.
박 대사는 9일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페루 정부와 KT-1 구매를 두고 벌인 협상은 정말 숨막히는
순간이었다.
오랜 협상기간 페루의 국방장관이 네 번이나 바뀌면서 매번 다시 설득해야 했다. 외교관으로서 협상력을
시험하는 계기였다"고 전했다.
한편으로는 협상 막바지 페루 현지에서 KT-1사업을 둘러싼 악성 보도가 잇따르면서 여러 번의 고비를 맞기도
했다.
현지 언론들은 올해 7∼9월 KT-1 사업에 부정이 있다는 식의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했고, 이는 막바지에
접어든 구매 협상에 악재로 작용했다.
주 페루대사관은 박 대사가 현지 TV에 출연해 의혹 제기에 적극 대응하는 한편 페루 정·관계 인사들과 접촉해
오해를 차근차근 풀어가는 고리 역할을 했다.
박 대사는 "부정 의혹을 제기한 언론보도가 나왔을 때 참으로 처연한 심정이었다"면서 "KT-1 구매계약
성사는 양국이 정상회의 등을 통해 쌓아온 신뢰, 우리의 항공 기술력, 마지막으로 민관 협동이 다 함께 이뤄낸
쾌거"라고 덧붙였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양정우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