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한인 "한국말 못해도 김치는 담가 먹어요"
2012.11.12
'쿠바 속 한국' 꿈꾸는 안토니오 김 함 한인후손 회장
"조상이 태어난 나라 꼭 가보고 싶어"
6일(현지시간) 쿠바 아바나 국제박람회장에서 만난 안토니오 김 함(69) 쿠바 한인후손회 회장은 함께
점심을 먹은 뒤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며 처음 만난 기자를 자신의 집으로 스스럼없이 안내했다.
그는 부엌 냉장고 위에 올려뒀던 플라스틱 용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더니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뚜껑을
열어 보였다. 그릇 안에 담긴 것은 다름 아닌 배추김치.
안토니오 김 함 회장은 현지인 아내와 함께 전기밥솥에서 밥을 퍼 김치와 함께 간단한 상을 차리면서
먹어보라는 손짓도 아끼지 않았다.
배추가 없어 양배추로 대신한 김치였지만 밥과 함께 맛을 본 김치는 웬만한 한국 식당에서 먹었던
김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양배추에 마늘과 파, 매운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 만들었다는 그는 매일 손수 만든 김치를 먹으며 식사를
한다면서 마치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직접 만든 고추장은 다 먹어버려 보여주지 못한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내가 한국말은 못해도 김치하고 고추장은 직접 담가 먹지요. 우리 아내도 자주 먹어요.
매운 고춧가루를 넣는 게 김치를 만드는 비법입니다"
그는 부모가 쿠바로 이민 온 한인 2세대로 국적과 고향이 모두 쿠바다.
부친이 1921년 멕시코를 통해 쿠바에 사탕수수 노동자로 건너온 뒤 태어난 탓에 한국은 사진이나
영화에서나 봤던 먼 나라로 남아 있다.
2006년 전임 회장이 세상을 떠난 뒤 한인후손회를 맡게 된 그는 자신과 같이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후손들이 쿠바에 1천명이 넘게 살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데다 모두가 경제적 상황이 어려운 탓에 후손들이 한자리에 모인 적은
여태껏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래도 최근에 중부 지역의 시에고 데 아빌라에서 한인 가정 17곳을 새로 찾았다며 후손회 회원이 계속 늘
어나는 것에 자부심을 보였다.
그는 쿠바의 한인들이 일제 강점기 시절 너무도 어려운 상황에도 십시일반 돈을 모아 독립운동 자금을
보냈던 일을 설명하며 자랑스러워 하기도 했다.
안토니오 김 함 회장은 기자를 만나는 동안 세 가지 꿈에 대해 얘기했다.
언젠가 꼭 한국을 가보는 것과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쿠바에
독립적인 한국 학교를 세우는 것이라고 했다.
이 모두가 다른 이들의 도움 없이는 쉽지 않은 일로 보였지만 이 중 한 가지는 머지않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그는 최근 아바나 국립대학에 만들어진 한국어 강좌에 다른 한인 후손들과 함께 등록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배우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정식으로 한글을 배우는 게 재미가 있는 지 서툴기는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종이에 또박또박
써 내밀기도 했다.
그는 "제가 한인후손 회장인데 한국말을 전혀 못해 부끄럽다. 이게 가장 부끄러운 일"이라면서 "내 조상이
한국에서 왔는데 조상이 태어난 나라를 꼭 가보고 싶다.
가서 보게 되면 참 놀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머나먼 조상의 땅을 떠올렸다.
(아바나=연합뉴스) 양정우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