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찌든 청소년들… 연주하며 '폭력'과 싸운다
2013.10.18 03:13
[베네수엘라 '엘 시스테마(El Sistema)' 운동 설립자 호세 아브레우 박사 訪韓]
빈민가 청소년 오케스트라 교육, 현재 세계 35개국에 운동 전파돼
음악 통한 건전한 시민 양성이 목표… 아직 할 일 많아, 내꿈은 현재진행형
최상의 교육체계 지닌 한국 부러워
베네수엘라의 수출품 가운데 '엘 시스테마' 운동처럼 세계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는 문화상품은 없는 것 같다. 1975년 청소년 11명으로 시작한 오케스트라 음악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는 38년 만에 세계 35개국에서 이 운동을 따라 할 만큼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베네수엘라와 소원한 관계인 미국에도 엘 시스테마 USA가 설립됐고,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멕시코 같은 중남미는 물론 영국,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포르투갈, 캐나다에도 '수출'됐다.
국내에도 2010년부터 문화부 산하 문화예술교육진흥원 주관으로 '엘 시스테마'를 본뜬 '꿈의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전국 30개 기관에서 청소년 1600명을 가르치고 있다. 빈민가 청소년들에게 악기를 쥐여주고 오케스트라 교육을 통해 변화시킨다는 한 '몽상가'의 아이디어가 세계를 바꾼 것이다.
아브레우 박사는 “엘 시스테마 운동은 음악교육을 받는 아이들을 통해 가족과 공동체에 변화를 가져오는 사회운동”이라고 했다. /채승우 기자 지난 15일 방한한 '엘 시스테마' 운동 설립자인 호세 아브레우(74) 박사는 "아직 할 일이 많다. 내 꿈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했다. "전 현실주의자입니다. 폭력과 마약, 빈곤처럼 베네수엘라를 비롯, 남미 전역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잘 알고 있어요. 희생자는 저소득층 청소년들입니다. 가난한 아이들일수록 최상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베네수엘라에는 여전히 오케스트라 교육을 기다리는 아이가 수백만명 있습니다."
아브레우 박사는 엘 시스테마 운동을 시작한 첫 1년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악기와 장비, 교사, 연습실 등 음악교육에 필요한 자원이 모두 부족했다. "음악인들도 우리가 유토피아를 꿈꾼다고 했어요. 해봤자 헛수고라는 거지요." 하지만 3개월 만에 100명이 모였고, 수도 카라카스 외무부 청사에서 오케스트라 창단 연주회를 가졌다. 경제학자이면서 오르간 연주자였던 아브레우 박사가 지휘를 맡았다. 엘 시스테마의 취지가 알려지면서 정부 지원으로 오케스트라 교육을 위한 거점 기관이 설립되기 시작했다. 지금도 베네수엘라에서 30만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오케스트라 교육을 받고 있다.
아브레우 박사는 "엘 시스테마 운동의 최종 목표는 엘리트 음악인이 아니라 건전한 시민을 키워내는 것"이라고 했다. "저희 슬로건은 '연주하며 싸운다'(play and fight)입니다. 음악교육을 통해 나라 안에 휴머니즘이 넘치게 하는 거지요. 학생들이 마약과 폭력과 싸우겠다는 정신으로 무장하는 겁니다." 그는 "음악은 개인만이 아니라 공동체를 생각하게 하는 정신의 결과물"이라고도 했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할 때는 다른 설명이 필요 없어요. 음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아름다움만 생각하는 거지요. 거기서 정신적 감동이 싹틉니다. 오케스트라를 통해 길러진 아이들은 학업은 물론, 공동체와 조화를 이뤄낼 수 있습니다."
아브레우 박사는 엘 시스테마 운동의 성공 비결로 음악교육에서 최상의 질을 확보한 것을 들었다. 그러면서 한국을 부러워했다. "한국은 훌륭한 악기 생산국일 뿐 아니라, 자격을 갖춘 선생님을 많이 갖고 있어요. 정부의 집중적 지원은 세계적으로도 성공적인 엘 시스테마 운동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아브레우 박사는 이번에 '엘 시스테마'의 모태가 된 카라카스 유스 오케스트라와 함께 방한했다. 1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단독 공연, 20일 덕수궁 중화전에서 한국의 '꿈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합동공연을 갖는다. 아브레우 박사는 "다음번엔 한국 오케스트라가 베네수엘라를 방문해 합동연주회를 가졌으면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김기철 기자